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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3 18:14 수정 : 2006.09.03 18:14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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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개혁세력이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을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무능했다”는 발언이 진보진영에서 나왔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8월24일에 시민단체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은 자아비판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김 의장이 ‘동지’들의 무능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확실히 진전되었지만 경제 상황이 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1997년 연말에 터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넘치는 달러를 처리하느라고 고민할 정도가 되었지만 일자리 부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는 사회 양극화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모두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 의장의 뉴딜정책은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풀어 투자가 활성화되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물론 기업 쪽에서는 정권이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그동안 시간만 낭비했다고 야단치면서 이제부터나 잘하라고 당부할 것이다. 지금 여당은 정책 판단을 흐리게 한 ‘나쁜 놈’을 찾아 처단해 지도부의 순수성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 알맞은 희생양으로 등장한 것이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직도 민주화 운동권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이 무능한 생활인이 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다. 1970~80년대부터 젊음을 바쳐 민주화 운동에 장기간 헌신한 사람들이 세상 물정이나 돈 버는 일에 서투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 정책을 결정할 만한 지위를 가질 수 없었으므로 김 의장이 말하는 무능한 민주인사가 될 기회조차 없었다.

물론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자기 길을 찾아 사회인으로 돌아갔다. 전문직, 예술인, 기업인, 종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 역량을 발휘하며 운동권 시절의 문제의식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는 인사도 많다. 노동운동을 하던 옛날의 여공 가운데에도 아파트 부녀회장이나 학교 운영위원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 애쓰는 사례가 많다. 밖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생활인이 된 운동권 인사들도 현실적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기회는 거의 없고 한 사람의 유권자에 불과하다. 김 의장의 발언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는 많은 옛 동지들은 도매금으로 건달이 되었다고 화가 나 있다.

김 의장의 반성은 결국 정치권에 들어간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이야기다. 정치권이라는 새로운 장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운동권 인사들은 계파 보스에 충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이들은 집권한 다음에도 성과를 내기 위해 관료집단의 입장을 살려 주어야 했고, 과격파라는 이미지를 씻기 위해 언론의 반응에 민감해졌으며, 정치자금의 공급원인 재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많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기득권 세력과 정면 충돌하는 경제개혁이나 국가보안법 문제는 회피하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이나 과거사 정리 입법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생색이 나고 예산도 별로 들지 않으므로 쉽게 추진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민주개혁세력의 무능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공약한 만큼 개혁을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의장이 아무리 공개적으로 반성을 해도 기득권 세력은 운동권 출신을 믿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대권 주자 김근태와 열린우리당의 딜레마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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