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9.13 18:19 수정 : 2006.09.13 18:19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기고

지난 5월3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비용 대비 효능이 좋은 의약품만 선별해서 보험 적용 대상으로 등재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포함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지난 7월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에서 미국 쪽 협상팀을 통해 이 방침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에 이렇게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혁신적 신약에 적용되는 ‘에이(A)7 조정 평균약가 제도’가 없어져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9년에 ‘혁신적 신약’의 약값을 주요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의 공장출하 평균가로 결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 관철시켰다. 에이7 조정 평균가 제도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가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글리벡을 먹고 있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경우 5년 생존율이 90%에 이른다.

글리벡은 1캡슐당 2만3045원이다. 환자가 하루에 4~8캡술을 먹기 때문에 한달 약값이 300만~600만원, 1년이면 3600만~7200만원에 이른다. 글리벡은 2006년 현재 한국에서 2000명 정도의 백혈병 및 위장관 종양(GIST) 환자가 먹고 있는데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1년에 8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꿈의 신약이라고 불리는 글리벡이라도 10% 정도의 환자는 내성이 발생하고 이들은 골수이식을 받지 않는 한 3~6개월 안에 숨진다. 그런데 올해 6월 글리벡 내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미국 다국적 제약회사의 스프라이셀이라는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청의 승인을 받았다. 한국 시판 예상가격이 한달에 500만~600만원 정도다. 신약 덕에 환자가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지만 엄청난 약값은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문제는 글리벡과 스프라이셀은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라는 점이다. 특허권과 7개국의 조정약가 제도가 현행 방식으로 유지된다면 몇십년 뒤에는 글리벡 한 종류의 약을 먹는 환자들을 위해 수천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지출될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는 사보험 중심인 미국의 실손형 민간보험을 한국에서 활성화시킬 것이고, 미국은 이를 통해 20조원대의 국내 건강보험 시장도 잠식할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현재 ‘혁신적 신약’으로 14종류가 보험 등재되어 있는데, 대부분 약값이 7개국 조정 평균약가보다 높은 한달에 수백만원대로 책정될 것이다. 현재 임상시험 중인 수많은 신약도 마찬가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3차 협상에서 미국은 기존의 태도를 바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다만, 협상을 할 때 ‘혁신적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여 약값을 결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겉으로는 수용한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요구대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머잖은 장래에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혁신적 신약의 보험 적용을 중지하거나 거부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약은 있지만 약값을 내지 못해 죽어가는 환자들을 바로 우리 주변에서 보게 될 것이다.

한국 협상팀은 포지티브 리스트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그 뒤에 숨겨놓은 미국 쪽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구체적인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사무국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