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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4 21:54 수정 : 2006.09.14 21:54

김상수 산업은행 부팀장 재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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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군사정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고등학생의 학원출입과 과외를 일체 금지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2002년 기준 2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2.9%로 가장 높은 반면, 공교육비 비중은 4.2%로 23위에 머무른다.

사교육 부문의 비대화는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많은 문제를 낳는다. 첫째, 가구당 가처분소득 감소와 국외교육 지출 증가로 국가 전체의 소비지출을 감소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둘째, 학생들에게서 학과 공부 이외에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발육 기회를 빼앗는다. 셋째, 부의 세대간 세습을 방지하는 공교육의 수직적 소득분배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수직적 소득분배 기능의 망실’이다. 수직적 소득분배는 증여세와 상속세 같은 세금을 통한 물적 자본의 재분배와 공교육에 의한 인적 자본의 재분배로만 가능하다. 즉, 수직적 소득분배의 실패는 소득 양극화의 세대간 세습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더라도 해결 방안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사교육 확대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본능적 사랑과 자본의 확대 재생산과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편하게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논의의 초점은 자본의 확대 재생산이다. 축적된 자본은 적정 수준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 점차 소멸한다. 예컨대, 어느 은행이 연간 물가상승률을 넘어서는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여 새로운 자본을 축적하지 못하면 은행 규모는 점차 작아져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 부모들은 대기업들의 오너들처럼 막대한 물적 자본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이상, 본인들의 얼마 안 되는 물적 자본을 자녀들에게 ‘교육’을 투입한 인적자본 형태로 물려주려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축적된 인적자본은 사회적 생존에 필요한 확대 재생산을 이뤄간다.

자녀에 대한 자본 승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들 대부분은 그러한 목적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삶이기도 하다. 문제는 축적된 자본이 없는 부모의 자녀들이다. 그들에게 희망 없이 가난의 세습을 받아들이라고 할 것인가. 과거 군사정권이 했던 것처럼 사교육을 강제로 금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부를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무조건 박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대안은 ‘공교육 정상화’다. 정부의 교육투자 확대, 우수한 교사와 프로그램의 확보, 학부모회 활성화 등을 통해 학교는 아이들에게 사설학원 이상의 우수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대대로 ‘소외의 세습’을 낳을 뿐이다. 물론 재원 문제가 뒤따른다. 그러나 현실적 여건에 기댄 예산 타령은 핑계일뿐더러 무책임하다. 적절한 세수 분배와 예산 집행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필자가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한 친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명동의 한 백화점에 갔고, 그날 에스컬레이터를 열 번도 더 탔다. 그 친구는 속초의 평범한 어부의 아들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름없는 조그만 어촌에 살고 있는 어떤 아이가 학원을 가지 못하더라도 집 옆에 있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서울 가서 에스컬레이터 한번 타 보겠다는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김상수 산업은행 부팀장 재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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