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8 18:31
수정 : 2006.09.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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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민 서울대 교수 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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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논술시험이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몇몇 대학에서 입학시험으로 도입한 논술은 교육의 이상과 현실, 수월성과 기회균등,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대학의 자율과 공공성이라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는 꿈을 키워야 할 어린 학생들이 있고, 사교육비에 찌들어 버린 학부모들이 있으며, 교육과정을 무시한 대학의 횡포에 피폐해져 버린 학교 교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부 대학들은 논술시험에 대해서 다음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첫째, 과연 논술시험이 어떤 성격의 시험이냐는 것이다. 논술시험이 글쓰기 시험인지 아니면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을 재는 시험인지 명확히해야 한다. 또한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을 평가한다면, 과연 어떤 평가도구가 객관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둘째, 논술에 이은 통합형 논술은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무엇을 종합하고 통합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지식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했는데, 구호만으로 학문 사이 경계를 그렇게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학문의 경계 넘기나 통합적 비판적 사고가 보이지 않으며, 대학에 존재하는 학문 사이 경계 허물기는 왜 그렇게 더디고 어려운 것일까? 동종교배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학문의 순종주의가 왜 우리 대학을 휘감고 있는 것일까?
셋째, 논술시험이 갖고 있는 이러한 본질적 성격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그러면 누가 이러한 통합형 논술을 가르칠 것인지 궁금하다. 국어교사, 윤리교사, 아니면 과학교사가? 이러한 접근 자체가 비통합적이라고 비판받을 소지가 있으니, 특정 과목의 교사에게 일임해서는 아니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생명복제에 관해서 배운다면, 과학적 사실뿐만 아니라 사회윤리 문제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제를 다루자면 관련된 글을 읽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도 하고 글도 써 보아야 할 것이다. 주장대로라면 과학·윤리 및 국어 교사가 모두 들어가서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으면 이상적일 듯싶다. 그래야 통합교과적인 훈련과 사고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수능은 개별 교과목 위주로 출제가 되니 수능을 준비하자면 개별 교과목 중심으로 흩어졌다가, 통합교과적으로 학습하기 위해 다시 모여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모든 학교가 이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술교육이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지 궁금하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일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만 이런 특수교육을 받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리나라 국민이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누구에게 필요한 능력인지 의문이다. 현재는 누구는 배우고 누구는 배울 필요가 없으며, 시기는 고등학교 때 배워야 한다는 논리다.
논술이 갖는 일부 교육적 가치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현 입시체제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택한 선택이라는 것도 안다.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면, 이것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더라도 가르치는 것이 전제된 이후에 평가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 교육적이다. 가르치지 않고 평가하겠다는 것이나, 평가를 통해서 교육내용을 바꾸겠다고 하는 일부 대학의 발상은 그래서 매우 편의적이고 자의적이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 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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