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9.26 18:31 수정 : 2006.09.26 20:38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기고

전국 법원 순회 도중 이용훈 대법원장이 행한 발언을 둘러싸고 법조계 전체가 뜨거워졌다. 검찰은 검사작성 수사기록의 증거능력이 무시되었다고 반발하였고, 변호사협회는 변호사의 역할이 비하되었다고 분노하며 대법원장 퇴진까지 요구하였다. 이에 대법원장이 어제 서울고법을 순시한 자리에서 자신의 발언이 거칠었음을 사과하였지만,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발언의 실제 취지를 되새겨 보는 일이다.

근래까지 우리 형사재판은 중립적 제3자인 법관이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검사와 피고인 간의 공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유무죄를 판단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검사가 작성한 수사기록에 대해서는 도전을 불허하는 강한 증거능력이 부여되어 있기에, 피의자가 검사 앞에서 자백을 하고 나면 이후 법정에 부인하더라도 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는 사실상 법정이 아닌 검사실에서 결판이 나고, 법정에서 피고인은 절차와 심리의 객체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하자, 이를 둘러싸고 법조계 내에서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이후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의 문제는 그 조서가 적법하게 작성되고 변호인 참여 등이 이루어지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렇지만 이 절충된 법안조차도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법원과 검찰 실무에서 ‘조서재판’의 관행은 온존되고 있다.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은 공판중심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현실에 충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대법원장은 사법의 중추는 법원이며 검찰과 변호사협회와 동렬에 있지 않다고 발언하여 두 기관의 반발을 일으켰다. 현재 통용되는 ‘법조삼륜’이라는 개념은 판사, 검사, 변호사는 ‘동업자’이고 ‘협조’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각 주체의 역할과 상호관계는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법조삼륜’이라는 말 뒤에 놓여 있는 법조 동업자의식은 없어져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사법시험 합격 이후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연수생 졸업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이는 부정한 청탁이 가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다. 그리고 법률가의 지위가 대국민 법률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법복(法服)귀족’으로 유지되고 있기에, 법률가들은 그 수를 늘리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직역과 관계없이 단결하여 반대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반복되는 ‘법조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법조 내부의 자정노력은 대증요법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사법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시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법안이 성안되었지만, ‘그들만의 리그’에 익숙한 법률가들은 ‘법률문외한’이 사법에 참여하는 것은 마뜩찮아 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사과를 하였지만, 이번 파문의 근본적 해결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법조 각 직역은 자존심 싸움이나 직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합의했던 공판중심주의를 실무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를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나 우리 사법제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는 분명하다. 이와 동시에 ‘법조삼륜’의 각 주체가 자신들이 법조의 폐쇄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관념에서 벗어나 사법개혁에 나설 것을 희망한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