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7 18:30
수정 : 2006.09.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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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렬 영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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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상주의 이념이 세상을 지배하여 돈이 지상 최고의 가치를 대변하던 프로이센 왕정 시절, 헤겔은 국가를 윤리적 이념의 구현체로 상정한다. 헤겔이 국가에 이토록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은 상업적 이해관계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시민들의 관계를 국가를 통해 조화롭게 조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전 그린피스 의장 볼프강 작스가 몇 해 전 한국에 와서 헤겔 이후 독일인들에게 국가란 언제나 소중한 것이라는 말을 한 것만 보더라도, 독일의 근대 민족국가 형성에서 헤겔의 이런 윤리적 국가관이 얼마나 중요한 정신적 자산으로 작용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바이다.
헤겔이 그려본 근대 민족국가의 이상적인 모델을 통해 보았을 때 의회의 기능은 국가의 일을 ‘함께 알고 함께 결의함’으로써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을 좀더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시민이든 민중이든, 이들의 대표 집단인 의회가 국가의 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심의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국민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는 점은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국가가 외부의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주권과 관련되어 있는 개념이라는 헤겔의 통찰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의 국면 속에서 민족국가의 위상을 성찰해볼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현재 한국이라는 근대 민족국가가 지구화된 세계체제 속에서 생존해 나가는 데에 한국의 국회는 무슨 기능을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우리는 세계 제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있다. 용산기지와 미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는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그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문제는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서의 패권주의 정책과 관련된 문제로서 한반도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과 생명붙이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이 높으며, 그 변화의 내용이 이 땅의 대다수 민중에게 아주 가혹한 시련이 될 가능성은 더욱 높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 모두 찬반 논쟁이 첨예한 사안들이지만, 갈등의 기본축은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와 일반 시민 또는 해당 주민 사이로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대추리·도두리의 해당 주민들의 고통이 더욱 커지고, 협정 체결 결과가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기지 협상에 관한 한-미 양국의 협정안에 대한 국회의 비준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무 내용도 모른 채 비준을 해준 국회의원들은 단지 사후 청문회를 약속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껏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지 이전비용 부담, 환경정화 처리비용 분담, 전략적 유연성 등 한국의 의회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우도, 국회 특위 의원들은 아직껏 한-미 간에 이루어진 협상안의 내용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세 명의 의원이 각각 발의한 통상절차법도 어떤 식으로 제정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할 뿐이다.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제를 막아내려는 민중들의 저항 에너지는 반드시 다른 체제를 상상하고 기어이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요즘 운위되는 정계 개편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중들이 일궈낼 새로운 체제에서 기존의 정치인들이 설 땅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승렬 영남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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