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신촌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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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담배 세금 인상 문제를 놓고 국회에서 논쟁 중이다. 상황이 종잡을 수 없게 되자 애연가들은 담배를 끊기보다는 오히려 담뱃값이 오를 것을 대비해 사재기에 돌입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외양간을 고치다 소를 잃게 될 상황이다. 금연은 우리가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어떤 노력보다도 중요하지만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각종 정책을 편다. 금연 정책은 크게 비가격 정책과 가격 정책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비가격 정책으로는 경고문 부착, 광고와 자판기 제한, 국민건강증진법, 금연 클리닉 지원 및 홍보 등의 활동이 있다. 가격 정책은 말 그대로 담배세금을 올려 담뱃값 자체를 올리는 것이다. 물론, 좋은 금연 정책이란 이 두 정책이 당근과 채찍처럼 적절히 잘 사용될 때를 말한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흡연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현시점에서 우리나라가 필요한 정책은 바로 가격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이유로, 병원이 의료보험 수가 등의 문제로 전문적인 금연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대대적으로 흡연의 문제점을 홍보한다고 할지라도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지 못하는 탓에 사실상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 실제로 한 금연 단체 조사 결과, 보건소 등에서 나눠주는 상당수의 금연 패치들이 효과적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다른 이유로, 우리나라 환자들의 건강행위의 독특한 성향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건강에 대한 성향이 높다. 반면,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데는 소극적이다. 실제 진료실을 찾는 상당수의 환자들은 이미 주변에서 들은 여러 조언을 바탕으로 본인의 질환을 속단하고 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상태에서 전문가가 진찰과 여러 검사를 통해 환자에게 적당한 치료법을 제시하고 권해도 대부분은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치료에 임한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하는 실행이 쉽지 않은 문제에서는 현실적으로 전문가와 심도있는 교육과 상담이 힘든 관계로 더욱 그러하다. 이런 성향은 금연 치료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부분이 흡연의 문제점을 알지만, 막상 전문가가 이를 조언하고 치료법을 제시해도 잘 듣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흡연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그 무언가가 없다면 아무리 금연을 교육하고 홍보해도 실제로 금연에 성공하기란 어렵다. 흔히 금연치료를 비만치료와 비교한다. 누구나 비만이 위험하고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 건강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실상 살을 빼기 어렵다. 더욱이 흡연의 피해는 대부분 15~20년 후에 오기 때문에 당장 흡연으로 말미암은 기쁨만이 와 닿을 뿐 20년 후의 일에는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격 정책만을 고수하는 것은 흡연자들에게 와 닿지 않는 탓에 흡연율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흡연은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건강에도 해를 끼친다. 그 첫 피해가 바로 그 자녀들이다. 흡연 문제는 장기적인 안목과 현재 흡연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고 풀어가야 한다. 당장은 가격 상승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15~20년 후 더 큰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 실제 흡연율을 낮추고자면 무엇보다 지금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야 한다. 강희철 /신촌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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