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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28 22:05 수정 : 2006.09.28 22:05

시론

요즘의 달러 약세가 처음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보유외환을 유로화 등 달러 이외의 통화로 바꾸어 보유하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신문 기고에서 어느 미국 금융전문가가 이를 평하면서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임기가 곧 끝날 것이니 박 총재가 그 후임이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논의를 매듭지었다. 한국이 가진 달러이지만 그 운용이 달러 중심의 자본의 세계화에 불안을 가중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한은 총재의 한 마디가 이처럼 국제금융가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우리 경제력이 커졌다는 자부심과 그에 따른 압력,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 등을 한꺼번에 생각하게 하는 일화였다. 한국의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환수 문제도 이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작통권 환수가 거론된 직접적인 요소는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확정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다. 이에 따라 우선 주한미군의 ‘한국’에 대한 개념이 불가피하게 바뀐다. 우리와 함께 주한미군이 지켜야 할 ‘한국=한국 국민’이란 개념이 세계 도처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미군의 ‘주둔장소=한국’이라는 개념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에 뒤따르는 것이 한-미 동맹의 개념 변화다. 이는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의 유연성에 따라 논리적으로 자연히 뒤따르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 주한미군과 우리가 행동을 같이 할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대만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힘의 대결을 가정해보라.) 이 두 가지 점이 착종된, 그 세번째 난점이 바로 남북분단의 문제다. 우리는 김영삼 정부가 북한 응징문제를 놓고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와 긴박하게 대치했던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작통권 이양 문제는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의 이념대립 문제도, ‘자주’나 ‘혈맹’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활동 장소의 유연성)을 ‘선택적 동맹’의 유연성으로 대처할 힘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에 대한 억제력으로서의 힘을 비축하면서 남북교류에 의한 북한의 건설적 변화를 보장해야 하는, 어쩌면 서로 상충하는 지난한 과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과연 한국이 일본처럼 부시 대통령의 크로퍼드 목장에서 한가롭게 말을 타고 즐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전쟁의 처참함을 겪은 세대를 안심시켜줄 것이 주한미군 이외에 달리 무엇이 있을 것인가. 지금의 현실로는 묘안이 없다. 동북아 권역에서 힘을 겨루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각기 자국의 이해에 반하는 남북한의 통일 내지 영구 화해에 눈감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듯,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작통권 이양은 하기에 따라 그 ‘유연성’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지만 그 문제가 ‘혈맹’이라는 흘러간 어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또 꼭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도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친구(미군)를 전시 인계철선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한국 대통령의 ‘점잖은’ 말의 이면에 숨겨진 고뇌를 우리 모두가 읽어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우리가 감당해야 할 그 많은 예산이 ‘자주’의, 그리고 ‘평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종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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