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09 18:21
수정 : 2006.10.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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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교수·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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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통령 탄핵 사건이나 행정수도 문제에서 우리 모두가 경험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이미 새삼스런 현상이 아니다. 물론 사법(司法)을 통한 정치에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하는 편가르기가 정치를 지배할 때 사법은 합리성에 기초하여 긴급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그 흐름은 그런 유익을 거론할 수 있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두 달 가깝도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두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파행이야말로 그 단적인 보기다.
주목할 것은 이 사태를 특수한 정치인 집단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히 ‘집권 율사’들이라고 불러야 할, 일단의 법률가 정치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두루 알고 있듯이, 이 문제는 비법률가인 조순형 의원의 매우 소박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예지를 갖춘 법률가들이라면 이를 사전에 대비해야 옳았고, 그렇지 못했더라도 합리적인 헌법 및 법률 해석을 통해 그들 사이의 합의를 마련함으로써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이라는 사태를 미리 막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시점에 집권율사들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뒤늦게 위헌 논란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헌법 및 법률 해석 과정에 있을 수 있는 견해 차이들을 정치적 입장에 따라 취사선택했다. 대권전략을 염두에 두면서 그 차이를 최대한 증폭시켰고, 이를 통해 동료 의원들과 각 언론과 시민단체들을 줄세웠다.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사태를 눈앞에 보면서도, 대통령이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식으로 이를 방기했다.
국회의원의 첫 번째 사명은 국민을 대표하여 ‘정치’를 하는 것이며, 그 일차적인 방식은 ‘입법’, 곧 법률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율사들은 정치적 타협이나 인사청문회법의 개정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스스로 정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소모적인 ‘위헌 논란’을 계속했다. 정말 믿고 싶지 않지만, 의정단상을 점거하고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하는 일들조차 이들의 작품이었다. 그동안 집권율사에게서 나온 말들 중에 압권은 ‘설혹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더라도 곧바로 헌법재판소장의 지위를 문제 삼는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사실상의 협박이 아닐까 한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준 권력을 고스란히 사법기관에 갖다 바치겠다는 말이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이 나라에서 ‘정치의 사법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입법기관의 본분을 망각한 채 마치 헌법소송 전문가인 것처럼 행동하는 집권율사들이다. 국회 내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적 쟁송거리로 변질시킴으로써 이들은 민주정치의 정상적인 흐름을 중단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헌정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공백사태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강력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조차도 이 옥신각신이 집권율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코미디라는 점은 이미 꿰뚫고 있다. 돌이켜 보라. 주연(법률가 국회의원들)도 조연(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대통령)도 엑스트라(대법원장)까지 모두 사법시험의 신화에 빛나는 법률가들 아닌가? 서로 정치적 경고절차가 어느 정도 끝났다면, 국민들의 노여움이 더 커지기 전에 이쯤에서 코미디를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올 일이다. 이제 그만 하라!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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