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6 20:05
수정 : 2006.10.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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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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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한 방송사가 ‘북한 핵실험’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 방청패널로 참석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직후와 달리 ‘왜’라는 원인 분석보다 ‘누구 때문인가’라는 책임 공방이 뜨거웠다. 이는 북한 핵실험이 대북 포용정책의 실패냐 아니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실패냐는 논쟁과도 맥을 같이한다. 물론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런데 토론을 듣는 중에 숨을 턱 멎게 할 내용이 있었다. 다름 아닌 “1994년 한반도 전쟁 위기 당시에 북한에 선제적 ‘정밀타격’을 해야 했다”는 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발언이었다. 놀란 토론자들이, 북한에 정밀타격을 하는 것은 곧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런데도 공격을 해야 했다는 말이냐고 재차 물었을 때도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을 보면서, 남한의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좋은 기회를 확실히 잡지 못하고 꺼내지 말아야 할 카드를 던진 김정일 정권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나름의 이유가 어떠하든 말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수백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없이 “공격? 네!”라고 대답하는 그 의원의 모습에서도 평화로 가고자 하는 어떠한 새로운 노력도,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직 상대에 대한 무한한 불신을 근거로, “전쟁을 두려워하면 전쟁을 예방할 수 없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는 그에게 어찌 대화와 타협을 통해 남북 사이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주문을 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는 길 내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는 북한의 군사모험주의 세력뿐 아니라 남한의 군사모험주의 세력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걱정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점증될 안보위협의 파도 앞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라크 파병연장안, 평택미군기지 이전 등과 같이 우리네 삶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모든 쟁점들이 휩쓸려가지는 않을까 말이다. 그래서 간절히 소망했다. 이 난국이 오히려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열망을 불지펴줄 불쏘시개가 되어주길 말이다. 그래서 이 열망들이 모여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를 근본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동북아 비핵지대화에 대한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주길 말이다.
핵실험과 그로 말미암은 파장들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풀 출발점이기도 하다. 상상해 보자. 한반도 비핵화가 동북아 비핵화의 토대가 되고, 이것이 동북아의 핵 군비경쟁을 미리 막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아가 한반도가 세계적인 핵군축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핵이 주는 불안감에 포획되어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를 구출해 낼 수 있는 방도가 바로 우리의 평화열망에 달렸다는 사실은 정말 가슴 설레지 않는가.
남과 북,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제사회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할 때,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시민사회가 이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댈 때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역사의 갈림길마다 늘 지혜로운 선택으로 사회적 진보를 이뤄 온 우리 국민들이 이번에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을 발휘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김경미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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