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17 19:36
수정 : 2006.10.1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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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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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회 여론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사이에도 북한 핵실험 이후 대북 압박수단으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중단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한쪽은 두 사업 중단을 지렛대로 삼자는 것이며, 다른 한쪽은 포용정책을 유지해 두 사업을 예정대로 계속 추진하자는 것이다. 추가 제재가 필요하냐, 아니냐는 소속 부처 처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태에서 과연 두 사업을 중단하는 제재 조처가 대북 압박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까지 남쪽 정부와 민간 투자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각각 1900억원, 2500억원으로 440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북쪽은 그동안 남쪽이 토지 개발 및 사용 대가로 제공받은 수입 외에 개성공단에선 근로소득 명분으로 60억원을, 금강산에선 관광 대가로 200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만약 경협사업이 중단된다면 민간 투자액이 포함된 남쪽의 4400억원 투자자금은 감가(감가)가 시작되며, 영원히 중단될 경우 그 금액 모두를 잃어버리게 된다. 다만 북쪽은 사업 중단으로 연평균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수입인 80억원과 연평균 금강산 관광수입 120억원 정도가 사업 재개 때까지 유보될 뿐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4400억원의 투자비용을 잃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있다. 그것은 모처럼 얻은 미래 통일기반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전형적인 합작 사업이다. 합작 비즈니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상호 신뢰와 믿음에 있다. 오늘로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포함한 모든 남북 경협사업을 청산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면, 북핵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고서 다시 속개할 의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두 사업을 결코 중단해선 안 된다. 지금 같은 상황을 오히려 남북경협이 비상업적 위험으로 중단될 수 없음을 기존 투자자나 향후 사업에 참여할 국내외 투자자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이 통일의 지렛대로서 충분히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날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다. 지렛대가 남쪽 또는 북쪽의 일방적인 무게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이미 통일의 지렛대란 사명은 잃은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통일 전 남북 경제시스템의 통합 기준을 미리 맞춰보는 공간이다. 여기서 형성된 표준 비즈니스 모델은 미래의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겠지만 자칫 국내외 정치적 외형에 현혹돼 미래 통일의 가능성과 수단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토마스 프리드만은 최근 그의 저서 <지구는 평평하다>에서, 과거 맥도널드가 영업을 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델컴퓨터의 글로벌 소싱 체계 내에 있는 국가간에 전쟁이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정치적 불안으로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업에 손해가 생기지 않게 기업가들이 각기 자국의 정치가와 정부 관료를 설득하여 위험을 해소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이 정도쯤은 돼야 남북경협이 비로소 통일을 위한 지렛대 구실을 한다. 그때까진 남북경협을 지렛대와 결부시켜 중단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큰 불행이다. 조금 일찍 달걀을 얻고자 살아있는 닭의 배를 갈라내는 일과 다를 게 없는 처사다.
임성훈/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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