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5 18:48
수정 : 2006.10.25 19:06
기고
올해는 한글날이 국경일로 승격된 뜻깊은 해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단순한 한국어 수출 차원을 넘어 한국문화 확산 차원으로 도약하고 있다.
2005년 현재 국외에서 한국어 강좌가 개설된 대학은 47개국 643곳이며, 한국학교·한국교육원·한글학교 수는 96개국 2100여 곳에 이른다. 사용자 순위로 볼 때 한국어는 프랑스어보다 한 단계 앞선 세계 12위. 재외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약 50만명이고 한류로 말미암은 잠재 수요는 수백만에 이르는 점에 비추어 조만간 세계 10대 언어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한국어가 독일어를 제치고 인기 있는 외국어 반열에 올랐다. 타이에서는 작년 처음 시행된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에 2만3천여명이 응시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몽골에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1만명이 넘고, 홍콩에선 작년부터 한국어 웅변대회를 열고 있다.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한국이 정보통신(IT) 강국에 이어 한류문화 강국이 되어가는 밑바탕에는 우리 말글의 기여가 절대적이다. 과학적이면서도 단순하여 문자의 입력·전송·검색 속도가 다른 언어보다 빠른 한글은 지식 정보화 시대에 개인과 기업,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한글은 한류의 핵심 스타로 떠올라 세계 문화상품 시장과 디자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렌은 “한글은 현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며 세계 디자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열린 ‘한글·한국어의 세계화’ 심포지엄에서는 16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로스 킹 교수가 강연을 했다. 그는 세계 최초의 한국어 체험마을인 미국 미네소타주 ‘숲속의 호수’ 학장이기도 하다. ‘숲속의 호수’에서는 일체의 대화를 한국말로 하고 한국 화폐로 물건을 사고팔고 한다. 킹 교수는 한말글 세계화에 적극 찬동하면서 한국어를 민족어로만 여기는 배타적 사고를 얼른 버리고 열린 세계어로서의 한말글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세계어로 도약할 준비가 된 한말글에 대해, 동포사회가 아니라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효율적인 교육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영어가 한국어의 발전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어에 목맨 비정상적이고 무차별적인 과잉투자가 문제라며, 영어에 투자하는 돈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한국어와 한국어 교육에 투자하라고 주문했다. 경기도 영어마을 두 곳에 들어가는 연간 예산이 수백억원인데, 국어정책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의 연간 예산은 백억원도 못 된다.
국력의 신장은 언어의 확산을 가져온다. 한국어 배우기 열풍에 맞추어 외국인 한말글 학습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시스템적 언어정책과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면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를 한글자막에 현지어 더빙으로 방영하는 것이 좋을지, 한국어 더빙에 현지어 자막이 좋을지에 대한 연구를 한다든지,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가르칠 교원의 체계적 육성, 현지어로 된 현지 사정에 맞는 교재 개발 등이 그것이다.
지식 정보화와 문화의 시대에 각광받을 한말글은 이제 한겨레에 국한된 언어정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상징으로서 산업적 차원과 세계를 대상으로 한 한말글 경영 차원에서 육성해야 할 때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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