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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6 17:38 수정 : 2006.10.2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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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가구소득이 50만원씩 줄어들면 사망 위험은 20%씩 증가한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산모는 대졸 이상인 산모보다 저체중아를 낳을 가능성이 1.8배나 높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다’로 평가한 비율이 정규직은 67.7%인 반면, 비정규직은 54.5%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중 건강 양극화에 관한 연구결과들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에 견주어 병에 잘 걸리고 일찍 죽는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빈부격차 해소 등의 사회학적 접근법, 담배 값 인상으로 흡연인구를 감소시키거나 의료급여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보건학적 접근법,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는 등의 의학적 접근법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이 모색되어 왔다. 그러나 ‘일차의료 강화’가 주요 해법의 하나로 상정되지 않고 있는 건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차의료’라고 하면 그 개념을 어렴풋이 알거나 오해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이미 자기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부합하는 일차의료 정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그 개념 정의가 이루어졌다. 일차의료는 ‘최초 접촉’ ‘관계의 지속성’ ‘포괄성’ ‘조정 기능’이라는 핵심 속성과 3개의 보완 속성을 가지며,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이고,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며,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한 분야’이다.

일차의료 기반은 건강 형평성에 크게 기여하며, 계층 간 빈부의 격차가 큰 지역에서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미국의 연구를 보면, 일차의료 의사가 많은 지역의 첫돌 전 사망률은 평균치보다 17% 낮았고, 적은 지역은 7% 높았다. 일차의료 의사가 적은 지역은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고 보고한 경우가 33% 높았다. 일차의료 의사 수를 늘리면 잘 사는 백인보다는 흑인 사망률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가 커서, 인종 간의 불균형을 완화시키며, 소득 불평등에 의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차의료 의사에 대한 접근이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영국에서 이뤄진 연구를 보면, 런던의 흑인은 백인보다 당뇨 합병증에 따른 하지절단 비율이 높지 않았다. 반면에 미국의 흑인은 백인보다 그 비율이 2∼3배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경제적 차이에 의한 효과를 배제시킨 뒤에도 지속되었다. 멕시코, 코스타리카, 볼리비아 등 개발도상국들에서도, 일차의료 프로그램이 계층 간 건강 격차를 좁히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일차의료 기반이 강한 나라는 보건의료비를 적게 들이면서도 국민건강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차의료 기반 강화를 위한 정책적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1985년 일차의료 전문의를 배출하는 가정의학과를 임상의학의 한 전문분야로 인정하였고, 이미 유명무실해진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시도한 바 있으며,(1989년) 시범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만 주치의등록제를 계획한 적도 있었다.(1996년)

이와 같이 일련의 보건의료정책들이 실패한 결과, 우리나라 일차의료 기반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크게 취약한 실정이다. 심해지는 건강 양극화 현상의 배후에 취약한 일차의료 기반이 숨어 있다.

이재호/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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