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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30 20:57 수정 : 2006.10.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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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이 타계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1930년대에 그는 치열한 실험정신과 문체 연구로 현대 한국어의 문장을 바꿔 놓음으로써 우리 문학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에서 모두 성공적인 작품을 썼고, 40년대에 이미 리얼리즘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도, 그의 소설 속에는 모더니즘 시절에 이미 개발해 놓은 영화 기법, ‘장거리 문장’, 여러 화법의 구사, 연결 어미의 능란한 사용과 자연스러운 풍자로 ‘최대의 문장가’ 자리를 지켰다.

해방 이후에는 소재를 민중의 역사와 삶으로 바꿔 주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가 월북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자유로운 창작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면 더 훌륭한 문체로 찬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어 못내 아쉽다. 역사소설은 다른 작가들도 쓸 수 있지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은 그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모더니스트 시절에 쓴 중·단편들은 한 단어 한 문장마다 오늘날도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문체가 참신하고 정확하며 숙고를 거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하나의 쉼표도 치밀한 확인과 계산 없이는 쓰지 않았다. 이지적인 내용과 감각적인 문장이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예술성에 도달한 작품이 나온다는 믿음은 그의 걸작들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그의 문학적 바탕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순박하고 착한 한국인의 감수성과 유머이자, 해학, 분노, 오기, 자존심, 반항적 외침이다. 그의 소설은 하나같이 사회적, 경제적, 인간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된 일제 치하 각 계층 인물들의 비극을 보여 주고 있다. 그와 함께 ‘생활’도 안 되고 한국어로 자유롭게 예술 창작도 할 수 없게 된 작가들의 난관을 자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평생의 문제이자 예술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희생된 우리 현대 작가들의 공통된 비극이다.

요사이 특별히 박태원을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말이 전에 없이 외국어로 오염되고 컴퓨터에서 마구잡이로 쓰이는 등 심각한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박태원 당대에도 우리말의 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작품 안에서 한자성어나 일본어의 광고 문단을 삽입하는 등 그 당시 문화권의 언어를 모두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중표현의 효과가 되고 언어의 총체적인 묘사로 한국문학 작품 속에 용해된 것은, 작가가 의식적으로 새로운 문체와 서술기법을 만들어내는 데에 이 외국어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작품 안에 들어간 모든 말이 당대의 언어 현실을 정직하고 생동감 있게 전달해준다.

그가 문장을 만들 때 우리말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느낀 행복감이, 결국은 처절한 위기 속에서도 저항력과 신념을 가지고 그를 끝까지 살아남게 한 작가의식이 아닌가 싶다. 이런 철저한 장인 정신과 문학적 구원에 대한 신념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우리 작가들이 절대 잊지 않아야 할 태도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는, 이태준의 말처럼 “우리 민족의 최초요 최후의 문화인 조선어의 명맥을 끝까지 사수하기에 적당한” 작가들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우리 작가들에게는 컴퓨터 시대에 더욱 우수성이 증명된 우리말을 다시 부단히 시험하고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과학적· 예술적 언어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부지런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이연행 불문학자·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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