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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31 17:56 수정 : 2006.10.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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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 이후 금세 핵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호들갑스런 분위기는 잦아들었지만, ‘북한 응징’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무슨 일에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면 그 일의 원인과 배경을 먼저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워싱턴포스트> 10월15일치 기사는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핵 갈등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는 데는 50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는 내용이다.

첫째, 1950년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격렬해지면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 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북한이 휴전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무기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셋째, 57년부터 미국은 남한에 핵포병부대를 배치하고 핵무기가 탑재된 미사일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미국의 핵 위협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담겨 있다.

남한 신문들은 어떠한가. 나는 미국에서 비밀해제된 50∼60년대 외교문서들을 바탕으로 미국이 늦어도 58년 1월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는 논문을 95년 발표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요청한 한 중앙 일간신문의 기자에게, 미국이 50년대 후반부터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할 계획을 세우다가 57년 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자 들여놓기 시작했으며, 91년 소련이 붕괴되자 가져갔다고 설명해주며 외교문서와 내 논문을 복사해 건네주었다. 그는 ‘1면 머릿기사’ 재료라며 기사를 썼지만, 11년이 흐른 지금까지 1면 머릿기사는커녕 마지막면 말단 기사로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반공반북 분위기를 약화할 우려가 있다는 신문사 간부들의 안보의식 때문이다.

흔히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우익신문들은 그렇다고 치자. 진보적이라는 신문에서도 왜곡과 편향이 걸러지지 않는 전문가 기고가 실렸다. <한겨레> 10월 24일치에서 통일연구원 전성훈 박사는 북한이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를 ‘집요하게’ 위반했다며, “북 핵실험에 대해 미국의 책임을 묻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미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전문가’조차 제네바 합의에 대해 이렇게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놀랍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분명히 합의 위반이다. 그러나 2002년 이른바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될 때까지 8년 동안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합의를 지키지 않은 쪽은 미국이었다. 합의문 제 1조에서 2003년까지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지만 2002년까지 터만 고르고 있었다. 제2조에서 대북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정치적으로 완전한 정상화로 나아간다고 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수교하는 것까지 막았다. 제3조에서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땅굴까지 침투할 수 있는 핵무기로 폭격하겠다는 계획까지 검토했다.

북한이 ‘집요하게’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게 아니라 미국이 줄기차게 위반했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을 정당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실을 고의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북한이 92년 남북 사이의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북-미 사이의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고 비판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먼저 안전보장을 해주면 핵무기를 없애겠다고 하고,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해야 협상에 나서겠다고 한다.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지사지하면서 양쪽 처지를 고려해 보고 바람직한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재봉/원광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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