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2 17:44
수정 : 2006.11.02 17:44
기고
최근 통계청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전년도보다 더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30년간 우리나라 출산율 감소세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흔히 이야기하는 비싼 교육비, 부족한 보육시설 등만으로 이렇게 빠른 출산율 감소 경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잘 살아보세>는 박정희 정권 시기 급속한 경제개발 이면에 있었던 가족계획 사업의 명암을 풍자했다. 출산율 저하의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사업이 국가 주요 정책으로 채택된 배경에는 산모와 어린이 건강을 위하기보다는 빠른 경제성장을 원하는 위정자의 정책 의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실제 가족계획을 담당하였던 실무자 가운데는 의료면허가 없는 무자격자가 많았고 실적을 채우기 위해 산모와 영유아 건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식 없이 불임시술 건수를 채우는 일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어린이를 많이 낳는 것을 천시하는 풍조와 더불어, 교육기간을 늘려 출산연령을 늦추도록 유도하고 청소년들의 성적 욕망과 이성교제를 억누르고 낙태를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등 사회 각 부문에 저출산과 관련한 기형적 문화가 만들어진 점이다.
가족계획은 건강한 산모와 어린이, 나아가 건강한 가족을 위한 자발적이고 신중한 결정이어야 마땅하다. 일방적 강요와 유도로는 달성되기 어렵고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출산율이 낮아지고 열차역 앞의 인구시계탑이 철거되면서 예방접종, 모유 수유와 이유식을 포함한 영양교육 등 전체적으로 산모와 어린이 건강을 돌보는 보건소 사업(모자보건사업)도 따라서 쇠퇴하였다. 우리나라는 출산율뿐 아니라 모유 수유율도 세계적으로 가장 낮고 제왕절개 수술이 아닌 정상분만으로 태어나는 어린이 비율도 가장 낮은 나라다. 출생시 몸무게가 2.5㎏이 안 되는 미숙아 비율은 해마다 늘어난다. 보건소 사업 쇠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독특한 상황은, 이제까지 경제논리로 출산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산모와 어린이의 건강, 인구의 질을 중심으로 출산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출산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보는 풍조는 변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식의 단편적인 정책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건강한 엄마에게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도록 도와주고, 합리적인 출산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을 알려주는 모자보건사업을 강화하고, 교육부·문화부·여성부 등 정부 유관부서와 사회 각 부문이 적극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까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출산억제 노력의 부당한 부분을 가려내 정상화하려면 입체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 정책본부’도 만들고 2010년까지의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계획 발표 이후에는 당연히 각 부처 및 사회 각계의 정책 모니터와 부처간 협의 중재 등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정책본부’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것부터 이상하다. 각 부서별 협력을 이끌고 정책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같은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과 가족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둔 출산정책을 펴는 것이다.
나백주/건양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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