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1.05 22:00 수정 : 2006.11.05 22:09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지난 11월2일은 경주 시민들이 주민투표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을 유치한 지 1년이 된 날이다. 정부는 1986년 울진·영덕·영일을 후보지로 검토하기 시작한 이래 2005년까지 20년 동안, 안면도 고성 양산 굴업도 강진 완도 부안 경주 등 무려 21개 지역에서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경주시를 방폐장 터로 결정했다.

경주시가 방폐장 터로 선정된 요인은 무엇이었나? 정부의 평가 자료를 보면, 첫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 고준위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분시설을 분리하여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에 대한 불안감을 누그러뜨렸고, 둘째, 방폐장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 약속을 법률로 보장함으로써 주민 신뢰를 높였으며, 셋째, 주민투표 제도를 도입하여 절차의 민주성을 강화했고, 넷째, 범정부적 추진 체제를 만들어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한 점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고 있다.

갈등 관리 전문가들은 소각장, 화장장 등 기피시설 갈등 해결의 필요조건으로 사업 내용의 안전성과 형평성, 추진 절차의 민주성과 효율성 등 네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 기준에 따라 경주 사례를 분석해 보면 모든 측면에서 이전 사례들과 상당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는 과학기술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다가 중반쯤에는 경제적 접근 방법을 추가하고 마지막에 정치적 접근 방법을 사용한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주민투표의 쟁점이 방사능 오염사고의 안전성이 아니라 부정투표와 지역감정으로 변질된 점이나, 여론 홍보비용으로 3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한 점 등은 안전성과 민주성 측면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로 남아 있다.

그런데 방폐장 갈등의 반대편에서 싸우던 환경단체들은 경주 사례를 어떻게 평가하고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궁금해서 관련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지만 주민투표법에 대한 위헌소송이나 영덕군의 홍보예산 집행 의혹 이외에 이렇다 할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20년 동안 노력한 보람이 없어 실망이 크겠지만 그럴수록 무엇이 문제였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경운동이 정부로부터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시설의 분리정책을 이끌어냈고, 방폐장 설치지역에 대한 정부 지원 수준을 끌어올려 지역 간의 형평성을 높였으며, 주민투표 제도와 정부 지원 약속들을 법률로 제정하도록 압박했고, 사용후 핵연료의 처분 방식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부가 방폐장 문제 해결의 성공 요인으로 자평하는 안전성과 형평성, 민주성의 강화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20년 동안 노력해서 쟁취한 소중한 성과라는 사실이다.

자책하고 있기에는 앞으로도 할 일이 너무 많다. 방폐장 설치·운영 과정의 안전성 감시 활동을 비롯해서 사용후 핵연료 처분 방식과, 어느 수준의 원자력발전 비율이 적정한지에 관한 결정 과정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더 중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일부 원자력 엘리트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위, 폭로, 고발, 감사청구, 소송 등 이제까지 사용해 온 수단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힘이 권력에서 나온다면 환경운동의 힘은 도덕성에서 나온다. 정부에 회의내용의 공개를 요구하기 위해 환경단체부터 회의내용을 공개하고, 행정 절차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기 위해 환경단체의 의사결정 과정부터 반대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주장하는 내용은 물론 운동방식의 진보성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환경운동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때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