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9 18:21
수정 : 2006.11.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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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흥봉 /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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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연금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3년째 잠을 자고 있다. 여야 정당의 정치적 계산이 발목을 잡은 까닭이다.
물론 국민연금 개혁은 어려운 과제다. 모든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사회보장 정책 원칙에 따라 풀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어렵다는 것은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할라치면 그 과정에서 논란도 많고 개혁 뒤 정치적 후폭풍도 만만찮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과 관련되는 쟁점도 만만찮은 과제들이다. 재정 안정화 문제 말고도 모든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각지대 해소, 전체 국민 계층 사이에 비용 부담과 연금급여 혜택을 공평하게 하기 위한 형평성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개혁이 어렵다고 해서 이 과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개혁을 더 미룰 수 없는 첫째 이유는 이 제도가 5천만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중요한 사회안전망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연금과 같은 노후 소득보장 제도가 없다고 생각해 보라. 직장이나 사업을 그만두니 소득은 없고, 부양해줄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부양할 형편이 되지 못하니, 노후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개개인이 금전저축이나 재산을 장만하여 노후를 준비하면 되지 않으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었을 때 여유가 없어서 저축을 못하거나 노후생활에 필요한 재산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실업·질병·사고·장애·가족사망·사업 실패 등으로 기왕의 저축이나 재산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국민연금은 이런 위험과 불안을 지니고 있는 인간 생활상의 취약성에 대비하여 국가가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고자 만들어 놓은 소득보장 제도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사회 안전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민연금 개혁을 미룰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재정 안정화 조처를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재정문제는 점점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에 저부담·고급여 체계로 출발했다. 이런 체계가 그대로 갈 경우 장기적으로는 재정이 불안정하게 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저출산·고령사회의 영향이다. 보험료를 부담하는 경제활동 인구가 줄고 연금급여를 받는 노인 인구층이 늘면 현재의 보험료 부담 수준으로 현재 정도의 연금급여를 보장할 수 없게 된다. 후세대가 보험료를 훨씬 더 부담하든가, 아니면 노인층의 연금액을 크게 줄여야 한다. 어느 쪽이든 그 영향은 심각하다. 잘못하면 국민연금 제도가 통째로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재정 안정화를 고려한 개혁안을 먼저 처리한다면 사각지대 해소와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 등 근본 개혁안은 지금부터 신중하게 연구하면서 장기적으로 추진해도 된다. 근본 개혁안은 자칫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을 두고 좀더 심도 있게 연구하여 추진하는 것이 낫다.
이런 근본 개혁안을 정치적으로 졸속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재정 안정화 방안과 같이 시급한 개혁과제를 정치적으로 계산하여 뒤로 미루어서도 안 된다. 국회는 시급한 과제인 재정안정화 방안과 장기적으로 연구검토할 개혁과제를 나누어 국민연금 개혁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 바란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살려야 한다.
차흥봉 /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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