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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9 18:52 수정 : 2006.11.20 15:02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시론

지난 14일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숭모제에서 구미시장은 “저는 님을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생각했다”며 “님의 거룩한 생애와 위대한 뜻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연설하였다. 경북도지사는 “각하께서 애지중지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우리 간절한 소망의 한 단편”이라며, 행사에 참석한 대선 유력후보 박근혜 의원을 치켜세웠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북한 전역에 세워져 있는 김일성 동상과, 김 주석 사망 후 후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행한 ‘유훈통치’가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 중 ‘공’을 부각시키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박 의원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그렇지만 이번 ‘반신반인’ 타령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보수진영 안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어 있는 ‘제2의 박정희’ 대망론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기에 우려를 자아낸다. 현재 보수진영은 집권전략 차원에서 박정희 향수를 계속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사면초가의 청와대와 사분오열의 여당 덕에 이미 ‘집권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국정운영의 책임 있는 주체로 행동하기보다는 ‘박정희교(敎)’의 교세 신장에 즐거워하며 대통령과 정부의 흠집을 부각시키는 데만 재미를 붙인 상태다. 그리하여 정파적 이해와 무관한 민생, 국방, 사법 관련 개혁법안들조차 장기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민간·민선정부가 이룩한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치적·정책적 오류로 국민적 피로감이 쌓여 있다. 권위주의가 종식된 지 오래임에도 박정희 찬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는 박정희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개혁진영에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과거 회귀를 통하여 보장될 수는 없다. 저임금, 저곡가에 기초한 노동집약적 경제발전전략이 국제화·정보화 시대에 통할 리 만무하고, 개성과 자율의 소중함을 체득한 우리 국민이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금지하고 일체의 반대의견을 폭압적으로 봉쇄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용인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일성보다 박정희가 더 낫지 않았느냐는 식의 변호는 하지 말라. 우리의 미래가 두 사람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결정나선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박근혜 의원은 숭모제 행사에서 “국민들이 희망,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데 지금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아버지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생각해본다”고 응답하였다. 그가 떠올린 아버지의 대처방안이 무엇이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사실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박 의원은 단 한번도 자신의 아버지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박정희의 혈연적·정치적 계승자임을 강조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박 의원이 진정 미래를 책임지는 정치인이고자 한다면 자신의 아버지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이제 진보·개혁진영이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운다고 표가 확보되거나 정책적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마찬가지로, 정권 탈환이 임박했다는 기쁨에 들떠 생산적 국정운영을 방기하는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진영도 미래를 맡을 자격이 없다. 시대착오적 박정희 신격화 발언을 들으며, 진보·개혁진영은 ‘운동’을 팔지 말고, 보수진영은 ‘박정희’를 팔지 말길 희망한다. 좌든 우든, 진보건 보수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기초하여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책임감 있게 실천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게는 미래가 없는 법이다.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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