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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3 17:25 수정 : 2006.11.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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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서 환경재난이 구조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다. 먼저 선진국에서 생겼는데, 주로 공해 다발성 산업설비에서 비롯되었다. 미나마타, 니가타, 요카이치, 이타이이타이 사건 등 일본에서 초래된 4대 공해병이 대표적인 경우다.

마침 유엔이 1960년대부터 후진국 개발을 지원하던 시기와 맞물렸던 까닭에 선진국의 공해 다발성 산업설비가 후진국으로 이전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후진국에서도 환경재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해피해 문제를 일으키다가 인도로 진출하여 공장을 운영하던 한 화학회사의 1984년 사고로 당시 즉사자 2800명을 내고, 현재까지 1만여명이 사망한 보팔사건이 대표적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환경문제는 자칫 더 심화·확산될 소지가 짙다. 그래서 유엔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1972년에 스톡홀름에서 유엔인간환경회의를 열어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했고, 1992년에 브라질 리우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담긴 정신은 유엔과 각 나라 정책으로도 반영되는 추세다. 물론 조처가 매우 미흡하여 21세기에도 환경재난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연과 생명을 보는 현행 가치관과 사회제도, 생활양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지혜와 교훈을 얻고, 이를 교육을 통해 미래세대에게 가르친다. 환경문제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 속에서 환경과 관련된 진실을 폄하하고,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좌편향으로 왜곡하는 우려스러운 흐름이 조성되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경제신문〉 11월8일치 ‘황당한 초등생 환경교과서’ 기사나, 〈조선일보〉 11월20일치 ‘좌편향 환경정책과 환경교과서’ 내용이 그렇다.

1987년 유엔은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거기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미래세대 인간의 필요 여력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현세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편으로 후진국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자 생존을 위한 ‘필요’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것의 실현을 위한 정의 구현을 밝히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지구 생물권과 생태계의 생명부양적 ‘한계’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비루한 삶과 빈곤에 시달리는 이유는 지구상의 자원과 재화가 부족해서라기보다 부의 흐름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여 누리는 혜택은 주로 상류층과 선진국이 독점하는 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약자와 후진국한테 집중되고 있다. 더 나아가 사회생물적 약자인 어린이는 이런 위해요인에 더 쉽게 노출되고 더 쉽게 환경질병에 걸릴 수 있다.

환경정의는 세대 간의 차원에서 미래세대를 존중하고 세대 내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배려하는 선에서, 자연에서 누리는 혜택과 부담이 공정하게 조성됨으로써 인간 문화와 자연이 상생하는 사회를 바라고 구하는 접근이다. 한국의 환경정책이 이런 내용을 이제야 조금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또 그런 것을 교과서에 담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런 생명을 존중하는 인도적 접근을 싸잡아 좌편향으로 매도하는 것은 빗나간 가치관으로 진실을 재단하는 태도가 아닌가.

한면희 /녹색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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