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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6 18:32 수정 : 2006.11.26 18:32

박성호 /한양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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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식재산 기본법’이란 이름으로 세 가지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모두 의원 입법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주도하는 것은 산업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관련 전문가들 모임이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자면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는 지적 재산권 관련법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할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과연 위 법안들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오히려 일부 사업자 단체의 이권 강화에만 기여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법안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2002년 11월 일본에서 만들어 시행하는 ‘지적재산 기본법’의 뼈대와 주요 내용을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표절 입법이 위험한 까닭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산업별 발전 정도와 중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역점 과제의 차이, 그리고 정치·경제학적 제반 조건들의 격차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강행되는 날림공사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를 외치면서도 초장부터 ‘남의 것 베끼기’로 출발하는 행태도 위험해 보인다.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실천과제도 문제다. 일본의 ‘지적재산 기본법’ 입법 과정에 참여한 일본 지적재산권법의 최고 권위자인 나카야마 노부히로 도쿄대 교수가 이 법의 실천과정에서 초래된 갖가지 폐해를 경험하고서 이 법의 기본 이념이라 할 이른바 ‘지재입국’(知財立國) 정책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카야마 교수를 비롯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논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적재산권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대상인 정보가 중요한 것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지적 재산 제도를 강화하면 산업과 문화가 발전하여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둘째, 지적 재산의 대상인 정보는 리눅스 소프트웨어처럼 정보 공유를 통해 발전할 수도 있고, 실리콘 밸리 사례에서 보듯이 영업비밀을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고용의 유동화가 이루어져 관련 기업 전체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데, 경쟁 정책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지적 재산권 강화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셋째, 국가 경쟁력은 지적 재산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방면의 여러 제도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지적 재산권 만능의 사고에 빠져 다른 제도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지적재산 파시즘’이 횡행한다.

일본이 ‘지적재산 기본법’을 시행한 지 거의 3년이 지났다. 우리는 일본의 시행착오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산자부 개최 토론회 참석차 방한한 나카야마 교수도 이 점을 강조했지만 이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적 재산권 만능과 행정편의주의에 기울어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일본 ‘지적 재산’ 기본법이란 명칭을 국내의 일부 직역 관계자들만이 사용하는 ‘지식 재산’ 기본법이란 용어로 바꾼다고 해서 일본법의 ‘아류’임이 가려지는 것도, 그 법에 내재된 문제점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국회는 이래저래 문제투성이인 이 법안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입법화에 신중해야 한다. 또한 일본의 경우처럼 일부 사업자 단체 등과 유착하여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이른바 ‘지재족’(지적재산 족속) 의원들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성호 /한양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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