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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27 17:18 수정 : 2006.11.27 17:18

오준호/사람연대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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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는 타워팰리스 아래 판자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대한민국 양극화의 생생한 자화상인 동시에, 빈곤의 대물림이 결코 개인의 책임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은 거리에 떠돌던 전쟁고아, 거지, 넝마주이 등을 사회정화란 이름으로 강제로 모아 자활근로대를 만들었고, 서초구 서초동 당시 군 정보사령부 뒷산에 이들을 집단수용하였다. 수백 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81년 말 정부는 이들을 곳곳에 분산하였는데 그중 한 곳이 포이동 200-1번지였다. 이곳은 당시 양재천변 쓰레기 하치장으로, 이곳에 던져진 자활근로대원들은 비닐하우스에 모여 살면서 양재천 물을 떠먹으며 마을을 일구었다. 전기, 수도, 화장실조차 없는 곳에 갓 정착한 주민들의 시련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다.

이들 자활근로대는 주로 고물을 주워 모으는 일을 하였는데, 국가는 경찰과 공무원을 파견하여 이들을 관리하였고 식량과 피복을 제공하였다. 경찰과 공무원들은 대원들에게 무시무시한 권력자였다. 속칭 ‘후리가리’로 불리는 집중단속 기간이 돌아오면 이들은 제일 먼저 경찰의 표적이 되었고 죄 없이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절도범이 되는 일도 흔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88년 올림픽 당시에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88년 말에 경찰은 자활근로대원의 사표를 일괄적으로 거두었다. 그런데 그 2년 후부터 토지 불법점유자라는 딱지와 함께 변상금 고지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강남구가 구역정리를 하면서 포이동 200-1번지를 266번지로 변경한 뒤 주민들의 주민등록 주소를 옮겨주지 않았던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활근로대 관리가 어려워지자 계획적으로 그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그 변상금이 현재 이자를 포함하여 가구당 평균 5천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 변상금 때문에 포이동 주민들은 돈을 벌어 외부에 집을 구해도 곧 압류가 들어오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2004년에 한 부부가 한 달 간격으로 자살한 것도 변상금의 압박 때문이었다.

이렇듯 강요된 빈곤은 대물림되고 있다. 2005년부터 이 지역에서 방과후 공부방을 하고 있는 사람연대는 지난 6월 여러 단체와 함께 주민들의 건강, 교육 상태를 조사한 바 있다. 결과를 보면, 건강보험 미가입자 비율이 강남구 평균의 20배에 가깝고, 스스로 건강하다고 인식하는 정도는 서울시 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주민 자녀들 중 현재 과외나 학원을 하는 경우는 전무했고 심지어 많은 아이들이 자기 집을 학교에서 숨기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주민등록 주소지를 266번지로 등재해줄 것과 토지변상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2003년부터 강남구청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취임 초기 주민들과 약속했던 면담을 거부하며 시간만 끌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문제는 국가의 인권 유린으로 생겨난 빈곤과 차별의 굴레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이에 주민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포이동 문제를 진정하려 하고 있다. 정부와 강남구청의 전향적 태도 없이는 포이동 266번지 문제의 역사적 해결은 요원하다.

오준호/사람연대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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