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8 18:01
수정 : 2006.11.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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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태/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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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간 의료보험 상품을 표준화하여 일반국민이 상품 내용을 알기 쉽게 하고 민간보험이 본인 부담금 전체를 보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결정이 있었다. 이를 두고 보험업계가 거리투쟁을 선언하는 등 논란이 뜨겁다. 민간 의료보험의 역할 설정 논의는 ‘적은 부담-낮은 급여’의 건강보험을 민간 의료보험으로 보충하자는 데 있다.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은 국민이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를 대비한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 보장영역의 중복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국가 의료보장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공보험과 사보험 사이의 국민 혼란을 줄이고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보장할 수 있는 결정이긴 하다.
국민은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이 많겠지만, 민간 의료보험의 실상을 보면 건강보험이 유익한 제도임을 알 수 있다. 과거 병력자와 노약자 등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을 거부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독이 어려운 약관 탓에 필요할 때 도움을 못 받는 피해사례가 많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보험사가 손해를 볼 리 만무하고, 마케팅 비용 등으로 관리·운영비가 많이 지출되어 실제로 가입자에게 주는 금액은 적다. 사회보험과는 달리 잘사는 사람이 좀더 부담하는 소득 재분배 기능도 없어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 건강보험이 민간 의료보험보다 일반 서민에게는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논쟁의 초점은 환자가 진료를 받을 때 직접 내는 법정 본인부담을 민간 의료보험의 보장영역에서 제외한 데 있다.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는 법정 본인 부담금과 비보험 진료비가 있다. 법정 본인 부담금은 의료기관 종별, 입원·외래별로 차이를 두고 있다. 본인 부담금이 없으면 모든 환자는 더 좋은 최고의 시설에서 가능한 한 충분히 의료이용을 하고자 할 것이다. 이는 상식이다. 같은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민간 의료보험이 공보험 재정에 영향을 주므로 법정 본인부담에 대한 민간 의료보험 적용을 ‘피해야 할 유형’으로 권고한 바 있다. 민간 보험사에서는 과도하게 진료받는 걸 막을 최소한의 장치인 법정 본인 부담에도 적용해야겠다고 떼를 쓴다. 이는 보험운영 원리와 맞지 않을 뿐더러, 불필요한 의료이용의 증가로 공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의 선량한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만 증가시킬 것이다. 민간 보험사에서는 민간 의료보험에서 법정 본인부담을 보장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본인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국민이 느끼는 부담은 법정 본인 부담보다는 비보험 쪽 고가 의료 서비스에 있다. 우선순위에서 볼 때 민간보험은 비보험 고가 의료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 부담과 국가 의료보장 체계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다. 게다가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경증의 외래 환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경증에 비해 중증 입원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므로 재정지출 구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민간 의료보험의 법정 본인 부담액에 대한 보장은 경증 환자들의 의료이용에 대한 국민 의료비 집중을 더욱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단기적으로 보험업계는 법정 본인 부담을 보장하는 상품을 개발할 수 없어 영업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조금만 멀리 보기를 바란다. 앞으로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신기술에 대한 수요가 늘어 민간의료보험 보장영역이 크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비용 의식을 갖게 하는 법정 본인 부담을 없애는 것은 공보험과 민간보험, 국민 모두의 부담을 늘리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민간 의료보험은 비보험 의료 서비스에 집중해야 중증 질환에 대한 국민 부담을 줄이고 국가 의료보장이란 넓은 틀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류지태/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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