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2.07 17:13 수정 : 2006.12.07 17:13

홍성민/동아대 정치학과 교수, 미 버클리대 방문학자

기고

‘구원, 해방 그리고 문제 해결’이라는 강연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 한달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강연에서 언급한 ‘종말론’이 국내 언론에서 이미 문제가 되었고, 마침 한국의 정치 민주화 과정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었던 필자는 이문열씨의 강연에 궁금증이 한층 올라 있었다.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일종의 종말론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정통성도 정당성도 없는 정권이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제국과 항쟁한 유대민족의 투쟁사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 무모한 전쟁이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로마제국은 오늘날의 미국을 은유하고 있다.

2006년 11월29일 버클리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행해진 이문열씨의 강연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선 이씨는 정치학의 초보 문법마저 무시하고 있다. 현 정부의 분배정책을 비판하려 했다면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그런데 최저생계를 위협받는 사람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원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인가? 오늘날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세계체제를 무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축적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력을 통한 로마제국의 팽창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지, 무모하게 항쟁하다가 희생당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서 보면, 보통사람들이 세상사를 이해하고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일정한 언어적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나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적 은유를 통해서 결정된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사회주의를 이해하기 쉽다. 또 이라크를 ‘악의 국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전쟁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은유다. 이것은 언어적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개인들의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을 용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입장 차이를 정치문법의 무지와 혼동할 수는 없다. 또 무분별한 정치적 은유가 정당화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씨는 한국민을 향해 상징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동에 싸여 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표현하는 언어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되게 변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한국 정치판에서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해묵은 언어적 유희가 사라져야 한다. 우리 정치는 오랜 희생 끝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 내용을 채워가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언어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사용의 관습이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언어의 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것이 오늘날 지식인의 책무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필가요, 지식인을 자처하는 그가 이러한 언어의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강연 내용이 이번에 출간한 소설의 내용이라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그는 2300만부의 소설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가!

홍성민/동아대 정치학과 교수, 미 버클리대 방문학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