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2 17:24
수정 : 2006.12.12 17:27
|
남윤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
기고
요즈음 국회 풍속도가 달라졌다. 국회가 열리는 동안 법제사법위원회 앞 복도에는 수많은 관계자들이 북적거린다.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보다 더 만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에 이어 법사위가 ‘상원’이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는 ‘법률안·국회규칙안의 체계·형식과 자구의 심사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정책적 심의와 의결을 거친 법률안은 형식상 큰 문제가 없으면 통과시키면 된다. 그런데 법사위가 이런 권한을 넘어 정책적 내용까지 개입하는 사례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법사위가 월권한 대표적인 예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심의 과정이다. 지난 9월21일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6개 법률안을 병합심사하여 마련한 ‘건강가정기본법 전면개정법률안’(여성가족위 대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여성가족위 대안은 1년여에 걸쳐 충분히 심의하였고, 관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11월24일 열린 법사위 대체토론에서 안상수 위원장은 찬성하는 단체는 거론조차 하지 않은 채 일부 단체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겼다.
이후 법안소위는 법안 개정을 반대하는 단체가 제기한 문제를 수렴한 수정안을 다시 법사위 전체회의로 넘겼다. 결국 12월5일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개정을 반대하는 단체가 공개토론을 요구했다는 것을 근거로 안상수 위원장은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자고 제안했고, 법사위 일부 위원이 공청회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공청회는 결정되고 말았다. 안 위원장은 개정안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보다는 특정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법안 개정 반대세력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까봐 두려워 직권을 남용하는 부당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법사위원장은 법사위 논의 안건에서 개정안 심의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가 열린우리당 간사가 문제 제기를 하자 다시 심의 안건에 포함시키는 해프닝을 벌였다.
어떤 법안이든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을 두고 제정 당시부터 ‘건강가정’이라는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과, 건강가정 시책이 가족 돌봄의 사회적 지원 등 변화하는 가족의 욕구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다. 여성계와 사회복지계가 반대했음에도 특정 이해집단에 의해 법률안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지난 3년여 동안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건강가정’이라는 법 명칭을 중립적인 명칭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법사위가 이런 사회여론은 무시한 채 특정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면서 미적거리다 못해 해당 상임위원회의 정책적 판단 능력을 무시한 채 재탕 공청회를 연다는 것은 국회의 비생산적인 단면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낭비되는 혈세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법사위의 권한과 기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의결된 사안은 형식과 자구에 문제가 없으면 공청회 절차 없이 통과시키도록 국회법을 정비해야 한다. 그동안 법사위가 상원처럼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는 문제로 속앓이를 했던 무수한 사람들의 원성에 국회는 귀 귀울여야 할 것이다.
남윤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