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중/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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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03년 3월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하여 아동 및 노인생활 시설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고 노인들은 자식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러한 서글픈 현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1년에 1만1000여명의 아이들이 버려지는 원인은 이혼, 미혼모와 사실혼이었으며, 노인들이 집을 나와 방황하는 주된 원인은 가정해체였다. 그렇다면 이혼과 가정해체를 예방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그 건강상태를 향상시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도록 국가가 뒷받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건강가정기본법’을 제정한 배경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2003년 12월에 통과하여 2005년 1월부터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아주 잘 만든 법률이다. 그런데도 일부 여성단체와 사회복지단체가 이 법의 제정 당시부터 반대를 했다. 반대하는 이유를, <한겨레> 12월12일치에 반대 단체의 대표가 기고한 글에서 인용해 보면, “건강가정이라는 개념이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과 건강가정 시책이 가족 돌봄의 지원 등 변화하는 가족의 욕구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 등”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35년을 재직한 필자를 비롯해 건강과 가정에 관련된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여기 제시된 반대 이유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대론에는 건강가정과 비건강가정의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는데, 건강이라는 개념은 이미 1930년대에 건강과 비건강이 아닌 ‘건강상태의 연속’으로 정립되었다. 각각의 인간이나 가정은 건강 또는 불건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건강상태에 있는 것이다. 반대 이유의 논리라면 건강보험법도 건강한 사람만 대상으로 한다는 것인가? ‘건강가정기본법’은 다양한 형태의 모든 가정과 이들에 대한 가족 돌봄을 포괄하고 있다. 혹 빠진 것이 있다면 보완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른바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의 내용을 보자. ①건강가정기본법의 명칭부터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바꾸고 ②가정을 가족공동체로 바꾸었다(제1조) ③사실혼을 합법화하고(제3조) ④가정의례·이혼예방·건강가정교육·혼인과 출산의 인식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는 등 법의 명칭·목적·이념·가족의 범위 등 전부를 개정하였다. 제시된 개정사유를 훨씬 뛰어넘어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내용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건강가정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인 가족정책기본법을 반대한다. 첫째, 가족정책기본법에서는 가정이 없어지고 가족만 남는다. ‘가족공동체’라고 하면서 ‘공동체’는 희미하고 오로지 그 구성원 개인이 있을 뿐이다. 가정의 소중함보다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가족정책기본법은 가정의 해체를 조장하게 된다. 둘째, 가정의례를 없애고 사실혼을 합법화함으로써 가정이 파괴된다. 셋째, 법안의 중요성에 합당한 국민적 합의 절차가 결여되었다. 여성들만 참석한 한번의 국회 공청회가 있었을 뿐이다. 가정의 근간을 바꾸는 내용은 여성계를 뛰어넘는 사안이다. 하물며 여성계 안에서도 우리나라 최대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계속 반대해 왔다.모든 것을 국민 앞에 내놓고 토론하자. 한국여성단체협의회(3천여개 단체), 대한노인회(중앙회 및 16개 시·도연합회, 246개 시·군·구 지회), 건강가정시민연대(42개 단체), 대한가정학회 및 생활과학관련단체총연합회(55개 단체), 한국교육삼락회총연합회, 불교, 유림, 가톨릭,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개정을 반대하며 토론을 원한다. 김화중/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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