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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1 17:03 수정 : 2007.01.01 17:03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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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희생적인 동물이 무엇일까? 개, 소, 양들도 인간한테 먹거리를 제공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그러나 돼지만은 오로지 그 목적으로 키워진다. 돼지의 평균 수명이 20년 정도인데, 몇몇 야생종을 제외하곤 2년 넘게 살기 힘든 게 그들 일족의 슬픈 자화상이다.

돼지는 흔히 우둔한 동물로 여겨진다. 주위에 동료가 죽어도(돼지농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 개의치 않고 먹는 일에만 열중한다. 앞을 잡으면 죽어라고 뒤로, 꼬리를 잡으면 죽어라 앞으로 가려 하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여러 마리를 좁은 곳에 두면 서로 꼬리를 뜯어먹는 ‘카니발리즘’ 현상 같은 것이 발생한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돼지들을 바보라고 놀려댄다. 그러나 한번쯤, 전쟁 중에 포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돼지들의 운명도 이 포로들과 같다. 그러니 바보같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진 개체만이 적자로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자기 종족과 짧은 생명을 보존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 사람들의 비아냥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의 혁명을 주도하는 지혜로운 존재가 바로 돼지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의 탐욕으로 그 사회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조지 오웰은 왜 하필 돼지를 동물 중에 선두로 세웠을까?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하나는, 농장에서 가장 억압받는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돼지이고, 다른 하나는 돼지의 영리함을 익히 알고 있던 저자의 경험이나 지식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많은 동물학자들은 돼지를 아주 영리한 동물로 분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해외토픽’에서도 수레 끄는 돼지, 버섯 찾는 돼지, 아이 키우는 돼지 등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돼지는 인간과 여러가지로 친근하거나 비슷하다. 사람의 남은 음식물, 심지어 인분까지도 즐겨먹듯, 식성이라든지 체구도 비슷하다. 그뿐만 아니라 내장기관의 구조나 크기까지 비슷하다. 그러니 인간 대체장기로 돼지의 내장을 쓰려는 생명공학 연구가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과 다른 점은 2~20마리까지 낳는 다산성이고, 임신 기간(114일)과 성장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이 역시 생물학적 실험을 위한 최적의 조건들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장기를 돼지로 대체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날이 와도 여전히 돼지는 그저 돼지로밖에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기 몸에 생명을 준 대체장기를 돼지의 것이라고 투덜거리는 인간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돼지한테 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돼지꿈은 무조건 길몽이고, 웃는 돼지머리로 제사를 지내고, 여전히 저금통은 돼지 저금통을 가장 선호한다. 여러 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돼지가 등장한다. <서유기>의 주인공, 십이지신 중의 하나도 돼지다. 돼지와 관련해서 부정적이거나 재수 없는 상징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순종적인 가축을 두고 너무 극단에까지 치달아 버린 현대사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업적 효율성과 이윤의 논리만을 앞세워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올린 밀사형 축사에 가둬 사육하는 축산 형태와 육류 생산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예의는 접어두고라도 우리와 친근한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돼지답게 흙 위에서 마음껏 뒹굴다가 죽을 권리 정도는 보장해줘야 되지 않겠는가.

최종욱/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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