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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07 18:23 수정 : 2007.01.07 18:23

이영조/월간 <갑천문화>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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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다문화 시대, 다민족 국가라는 말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 농촌 구별 없이 국제결혼이 늘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가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매매혼 정도로 여기거나, 그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생활의 방편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충남 홍성에서 있었던 이주여성들의 펼침막 철거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쁜 ○○○ 신부 다수 대기’, ‘초혼, 재혼, 장애인 환영’ 등 외국인 여성을 상품화하는 내용에 대한 그들의 분노에 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 입성이라는 목적만으로 무조건 결혼에 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결혼을 계기로 또다른 삶을 계획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과거 우리의 어린 딸들이 사진 한 장 보고 하와이로 먼 길을 떠났듯이, 고국의 가난한 부모형제를 위해 낯선 한국 남자를 따라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들은 우리의 요구에 맞추어 우리 땅에 온 사람들이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결혼을 전제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는 현실은 다르다. 언어 소통, 한국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스럽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시집 식구들과의 유대관계다. 그들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단지 결여를 채우기 위한 도구쯤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나라와 나이에 따라 ‘몸값’이 다르고, 이러다 보니 조그만 실수에도 ‘쟤를 데려오는 데 돈이 얼마가 들었는데…’란 말까지 나온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결혼 상대자를 만나고, 식을 올리고, 비행기를 탔던 이주 여성들에게 가족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요구한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 새댁들 중 제대로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시부모와 한집에서 살 며느리가 몇이나 되겠는지, 당신의 아들들이 낯선 나라에 가면 한두달, 일이년 만에 그 나라의 말을 다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는 지난해 매주 한 번씩 도시 이주여성의 가정을 방문해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다행히 그 가정은 행복해 보였다. 한국어를 모르는 며느리에게 전자사전과 어린이용 동화책을 선물해주는 시아버지가 있었고, 시어머니는 예의바른 한국어를 가르쳐주려고 나이 어린 며느리에게 꼬박꼬박 존대어를 썼다. 더운 나라에서 살다 온 며느리가 추울까봐 보일러를 온종일 틀어놓았다. 서툰 음식 솜씨지만 며느리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고, 어린 손자를 업고 즐거워하는 두 분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 여성들이 이 땅에서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에 앞서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의 사고의 전환이다. 아직도 피부색의 차이와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지구촌 사회에서 밀려나기를 자처하는 일일 뿐이다.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에서 오는 소외감,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한국 가족의 사랑뿐이다. 이주 여성들을 ‘소중한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그들은 진정한 한국사회 가족의 구성원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영조/월간 <갑천문화>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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