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4 18:17
수정 : 2007.01.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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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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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속철도(KTX) 승무원 문제와 현대자동차 노사 갈등이 해를 넘기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사내 하청 노동자 1만여 명에 대해 노동부가 ‘불법 파견’(2004년 12월) 판정을 내린 뒤 2년이 흐른 최근,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라고 처분했다. 기륭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르네상스호텔 쪽도 같은 처분이 났다. 결국 ‘합법 도급’이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연말 성과급이 기대와 달리 150%가 아닌 100%만 지급되자 현대차 노동자들은 불만이 쌓였고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마침내 노조는 만장일치로 오늘부터 부분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의 경우 지난해 3월 민변이 불법 파견이라는 의견을 낸데 이어 노동부 장관도 같은 의견을 표명했지만, 노동부는 재조사를 통해 지난해 9월 합법 도급 판정을 내렸다. 새해 들어 노동부 장관은 “철도공사가 케이티엑스 여승무원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향적 태도를 보였지만 정부 부처간 견해가 달라 해결이 불투명하다.
내가 마을 이장(충남 연기군 조치원 신안1리)을 맡아 건설 자본과 싸우며 깨달은 게 있다면, 법정 다툼은 단순히 이론과 논리만으로 결론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편으론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다른 한편으론 그 판정 결과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가져오느냐를 두고 정치적 고려가 반영된다. 더구나 노사관계엔 법적, 경제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바로 여기서 나는 노동 현안을 발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동력’ 관점이 아니라 ‘삶의 질’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1919년에 창설된 국제노동기구(ILO)는 처음부터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란 철학을 깔았다. “노동력은 상품”이라 보는 견해에 대한 반론이다. 불법 파견 여부나 성과급 문제는 그 본질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상품의 거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이지만, 끝에 가면 ‘사람답게 살기’의 문제, 또한 ‘사람에 대한 신뢰’ 문제에 닿는다. 사람을 노동력으로 보는 한, 노동자 쪽이든 사용자 쪽이든 비용 절감과 경영 합리화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여 기존의 노동력 관점과는 전혀 다른 관점, 즉 삶의 질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비인간적 논리의 덫에서 자유로워진다.
삶의 질 관점으로 현안을 보면 이렇다. 수백명의 케이티엑스 승무원이든 1만여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든, 고용 불안과 극심한 경쟁이 아니라 나름의 소박한 행복을 누려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손님에 대한 서비스도 성심껏 할 수 있고 품질 좋은 차도 신명 나게 만든다. 가정과 직장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도 잔업과 특근을 마다지 않았던 현대차 4만여 노동자들은 성과급 50%를 덜 받았다는 문제보다도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회사가 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좀더 헤아린다면 그런 불신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 가정과 직장의 균형이 회복돼야 한다. 동시에 실업자나 비정규직이 점차 사라지고 모두 일하면서도 삶의 질이 높아지는, 그런 방향으로 다양한 정책과 제도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노사 모두 참으로 ‘윈-윈’ 한다. 정말 다음 케이티엑스를 탈 땐 마음으로 활짝 웃는 승무원들을 만나고 싶다.
강수돌/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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