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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6 17:34 수정 : 2007.01.16 17:34

이재현/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론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아세안)이 올해로 창립 40돌을 맞는다. 아세안은 창설 당시 우려와 달리 40여년을 지속해 오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된 지역협력체의 하나로 발돋움했다. 약소국이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동남아시아 지역 나라들이 40년 동안 아세안을 유지해 온 것 자체는 후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법적·제도적 기반이 없는 연성조직인 아세안은 단지 만남을 꾸준히 유지했을 뿐, 숱한 국가 사이 협력이 필요한 사안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사안들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아세안은 경제위기 앞에 너무도 무기력했고, 매년 되풀이되는 연무(엷은 안개), 만연한 지역내 초국가적 범죄, 빈곤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1997년 군사독재 나라인 버마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국제사회의 비난만을 샀을 뿐이다. 최근 아세안은 ‘아세안+3’이라는 확대된 구도 안에서 동북아 나라들에 밀려 자기의 정체성 불안까지 느끼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아세안은 결국 있으나마나 한 조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사이에 지난해 말 연기되었던 아세안 정상회의가 2007년 1월 필리핀 세부에서 열렸다. 이 정상회의에 2006년부터 아세안이 야심차게 준비한 명망가그룹(EPG)의 아세안 발전 방안이 제출됐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말 정상회의에 <아세안 헌장>이 제출돼 채택될 예정이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 헌장의 핵심은 아세안이란 기구에 법적, 제도적 기반을 부여하는 것이다. 회원국이 아세안의 결정사항과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키고, 나아가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하며, 정책을 결정할 때 우선 합의를 시도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투표에 부친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금까지의 아세안 운영원칙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유럽연합과 같은 제도화 방향으로 움직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현재 아세안에는 회원국들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아세안은 지금까지 내정 불간섭, 협의와 합의, 주권 존중이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이 원칙들이 역내 주요 문제들에 관해 정책 결정을 내리고 강제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다양한 역내 사안을 두고 나라마다 처지와 손익계산이 다르기 마련인데, 이 운영원칙은 지역 전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 결정과 집행을 불가능하게 하여 지역 협력체로서 아세안의 정체성과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주범이다.

아세안의 변신 노력에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버마나 라오스와 같은 나라들은 이런 변화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약 10여년 전부터 지역 협력체로서 무력한 아세안의 모습을 지적하는 ‘아세안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회원국들 사이에 퍼져 있다. 또 최근 아세안+3 체제 속에서 아세안의 정체성과 자리매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아세안 헌장을 통한 제도화 움직임은 아세안이 동북아 국가들을 포함한 동아시아로의 확대를 지향하는 동시에 내적으로 아세안 안보공동체, 아세안 경제공동체, 그리고 아세안 사회문화 공동체를 먼저 달성하여 자기 정체성과 응집력을 강화하려는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세안 나라들은 이런 발전 방향에 동의한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아세안은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다. 아세안이 법적·제도적 기반을 확립하고 한 단계 발전된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앞으로 어떻게 그 추진력을 잃지 않고 전개될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재현/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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