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기/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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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금 대학은 입시철이다. 전쟁과도 같은 입시경쟁을 치르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수도권과 지방, 국립과 사립으로 나뉘어 서열체계를 이루는 대학들에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은 그 자체가 매우 비교육적이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계발하는 교육의 근본적 기능을 크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학 입학은 양극화된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을 위계 사다리에 배치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 서울 강남의 전문직 부유층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대학이 사회 이동의 통로가 아니라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재생산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입시를 바라보는 맘이 편치 않은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입시 이후 학생들과 학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고액의 등록금 부담 문제다. 이미 사립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연간 천만원에 접근하고 있으며, 매년 인상률은 물가나 소득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다. 고액 등록금은 우리 대학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은 입학 직후부터 아르바이트 취업에 내몰리는데, 그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이제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는 많은 학생들에게 과외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학업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자 공부보다 우선 해야 하는 과업이 됐다. 아침부터 졸고 있는 밤샘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다수의 저소득층 학생들은 대학생활에서도 구조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이제 대학에서 사회 비판적, 진취적인 대학생을 찾기도 쉽지 않다. 사회 참여를 대신한 것은 매년 봄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처럼 되풀이되는 등록금 투쟁이다. 본관과 총장실을 점거하여 학교 행정을 마비시키고 기업의 사용자를 대하듯이 교수들과 적대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폐쇄적으로 대학을 지배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재정 기여는 외면하는 사학재단의 전횡 속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매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생 1인당 연간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쳐 세계 최저 수준이다. 반면 등록금 수준은 소득수준에 견주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등교육에서 교육비의 사적 부담 비율은 8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21.9%의 네 배에 이른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서는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등록금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대안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전국교수노조가 주창하는 등록금 후불제는 대학생이 재학 중 등록금을 내지 않고 졸업 후 세금으로 국가에 교육비를 납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졸업 후 실업자이거나 일정액 이상의 소득을 올리지 못할 경우 세금 납부에서 면제될 수 있다. 이는 국가와 교육수혜자 개인이 고등교육 재정을 분담하는 체제다. 대학의 고질적인 재정 부족 문제나 재정 운용의 투명성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대학에는 전혀 부담이 없다. 등록금 후불제로 대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육기회의 불평등과 교육비 부담 증가, 등록금을 둘러싼 대학 내의 퇴행적 갈등을 해결하고 대학 교육의 질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기초가 될 수 있다. 올해와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논란과 같은 정치적 분쟁에 몰입하기보다 대학 교육을 살리고 정상화하는 생산적인 논의가 꽃피기를 기대한다.노중기/한신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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