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21 18:25
수정 : 2007.01.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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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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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이 지난주 주요 쟁점 분야에서 별 진전 없이 마감됐다. 지금대로라면 7차는 물론 8차까지 갈지라도 서로 만족할 만한 협상 결과가 나올 것 같지 않다. 미국 쪽은 보호주의 경향이 강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한 이후 우리 쪽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으나, 남아 있는 쟁점들이 워낙 민감한 것들이어서 우리로서도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마지노선 논의가 활발했다. 협상을 하더라도 지킬 것과 얻을 것의 최소한의 범위는 정해놓고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제시한 마지노선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사이에 교집합은 존재했다. 그런데 남은 쟁점들은 하나같이 이 공통 마지노선에 걸리는 것들이다.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 미국의 반덤핑 규제, 신금융상품과 민감 농산품, 그리고 통신·방송·가스·전기 등 공공서비스 분야 개방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노선 논의가 활발했던 만큼 적어도 이 문제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인식 수준은 상당하다. 모두가 사회적 현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현 정부가 ‘정치적 결단’을 통해 이러한 쟁점들을 미국이 바라는 방향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협상은 타결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비준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우선 국회 비준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총선을 1년 앞둔 국회의원들로서는 이미 사회적 현안이 된 다수 쟁점들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한 비준안을 통과시키기란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이 안 될 경우 미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 동맹국 정부와 타결을 끝낸 협정이 그 동맹국의 국회로부터 거부당한다면 그것은 미국으로서는 굴욕스러운 일이다. 우리 정부의 진의를 의심할 수도 있고 국회나 우리 사회의 대미 정서를 오해할 수도 있다. 한편, 한국 정부의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 역시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대외관계에서 정부와 국회가 따로 노는 나라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설령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다 할지라도 ‘사회적 비준’의 문제는 남는다. 국회 통과가 형식적 비준이라면 사회 통과는 실질적 비준에 해당한다. 실질적 비준을 얻지 못한 채 형식적 비준만으로 협정이 발효될 경우 그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실재 혹은 잠재적 피해 집단들의 규모가 상당하고 그들의 저항과 반발이 거세고 길게 간다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필시 그들은 협정이나 국회 비준의 무효화 혹은 철회를 요구할 것이고, 종국에 그들의 불만과 불안은 반미감정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반미감정 고조는 다시 미국의 반한감정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국 양국관계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무조건 시한에 맞추어 협상을 타결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어려움은 오히려 협상 종결 후에 찾아올 수 있다. 이제는 비상구도 찾아놔야 할 때다. 국내 비준을 순조롭게 얻어낼 자신이 없다면 협상의 연기나 교착 상태의 조성 등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전(全)미주 자유무역협정’ 등과 같은 집단 협상국까지 포함하면 현재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 연기 혹은 결렬 상태에서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50개국에 가깝다. 대부분은 미국의 우방국들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의 대미 관계가 악화된 것은 아니다. 협상은 협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협상 타결로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기보다는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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