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29 17:44
수정 : 2007.01.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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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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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자기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이 최근 <한겨레> 등을 통해 보도되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외비 문건의 누설 당사자를 조사하겠다고 한다. 마치 그 문건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듯 호들갑을 떠는 셈이다. 이런 국정원의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왜냐하면 지난해 12월 국정원이 입법예고한 ‘비밀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비밀보호법)에는 그동안 대외비 제도가 오용·남용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대외비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외비를 폐지한다는 법안을 만들어 놓고 대외비 공개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먼저 공개된 문건이 ‘비밀기록’의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국정원에서 입법을 예고한 비밀보호법안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법안에는, 그동안 밀실행정에 악용되었던 대외비 제도를 폐지하고 30년이 경과한 비밀기록들은 원칙적으로 비밀을 자동해제하는 등 긍정적인 조항들도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정원의 권한 남용이 우려되는 조항들이 너무 많다. 그동안 국정원의 권한 축소 및 개혁을 요구했던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우선 각종 처벌의 조항이 너무나 강력해졌다. 일단 처벌 범위를 ‘누구든지’로 넓혔을 뿐 아니라, 그 행위도 ‘탐지 및 수집’만 하더라도 7년 이하의 징역, 타인에게 누설할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말미암아 권력 감시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이 이 조항에 해당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물론 국가 안전보장 및 국가 이익을 해할 목적일 때만 처벌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했을 경우 면책사유를 두고 있지만 단서조항 자체가 모호해 언제든지 오·남용될 위험성이 있다.
둘째, 국정원의 권한 강화다. 비밀보호법 22조에는 비밀의 취약도 및 위험도 평가뿐만 아니라 분실·누설 등에 관한 경위조사 및 고발권까지 두고 있다. 비밀의 범위도 통상·기술·과학까지 확대하고 있어, 사실상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 및 연구단체까지 감시할 권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94년에 폐지되었던 안기부의 보안감사권 부활까지도 우려하게 하는 대목이다.
셋째, 비밀의 자의적 지정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법률안에는 비밀의 지정권자를 대통령, 국무위원 및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규정하고, 비밀지정 원칙도 법령상 은폐, 행정상의 과오 등의 목적으로 비밀을 지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비밀기록의 자의적 지정에 대한 징계 및 처벌조항은 없다. 지정권자에게는 아무런 벌칙조항을 만들지 않고 그것을 수집·탐지·누설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밖에도 국정원의 견제장치 미비, 비밀 개념 모호 등이 문제점으로 보인다. 이는 국회 차원에서 반드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비밀보호법안에 긍정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이렇듯 많은 우려가 나오는 것은 국정원 스스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정원은 권한 강화에만 매달리지만 말고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길이다. 이번 문건 파동을 통해 국정원 스스로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전진한/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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