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4 18:08
수정 : 2007.02.0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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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원/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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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프랑스 파리고등사회과학원 방문교수로 있는 동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하나인 샹탈은 아이가 다섯이다. 내 아이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헤미는 형제가 둘이 더 있다. 가끔 우리집으로 놀러 오곤 했던 이웃집 뱅상도 형과 누나가 있다. 물론, 샹탈도 헤미 엄마도 뱅상 엄마도 모두 자기 일이 있다. 그 아이들의 할머니들이 노년을 희생해 가면서 손주를 키워주지 않았지만, 샹탈네나 나머지 두 집이 고액의 도우미를 고용하느라 어려움을 겪거나 출근하는 것이 미안해 가슴아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저출산’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부터는 연일 프랑스 이야기다. 프랑스의 출산율이 급상승 중인 데 관심을 갖는다면, 프랑스의 여성 취업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여성 취업률은 출산율만큼이나 높다. 출산과 양육이 전적으로 개인의 몫인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낳아서 ‘우리’가 키운다. 아이 하나를 낳고 키우려면 돈, 시간, 힘, 지식, 철학, 보육 및 교육시설, 의료시설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매우 구체적으로 배려되어 있고 사회 전체가 힘을 다해 돕는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출산 후 아이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영역의 거의 모든 정보들을 필요한 시기에 공적 영역으로부터 제공받는다. 보모에 관한 업무도 구청이 중심이 된다. 탁아시설 우선이용권은 직장여성에게 있지만, 전업주부도 필요하면 집 가까운 곳에 얼마든지 아이를 맡길 수 있다. 보육시설은 출근시간 전에 아이들을 받고 퇴근시간 후까지 돌봐준다. 교육과 의료 시스템은 아이를 낳고 싶어지게 만드는 부분이다. 공교육은 확실하게 사교육을 압도하며 그런 공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우리’로 커 나간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 키워주기 때문에 기관에 맡기고 싶어진다. ‘우리의 아이’라는 생각은 의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모든 것이 느리기 짝이 없는 프랑스이지만, 주치의는 아이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신속하게 대처한다. 왕진의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태아기부터 취학 전까지는 전체 인생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다. 머리 좋은 아이 만들기에 모두들 관심을 갖지만, 태아의 신경계는 외부 위험 요인에 매우 취약하다. 임산부에 대한 보호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여건은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 인지 능력이 낮은 아이, 문제 행동이 많은 아이로 될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출산 이후는 또 어떠한가. ‘워킹맘’들에게는 “제발 좀 빨리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그 시기는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시기다. 손이 많이 가는 시기란 것은 그런만큼 제대로 키워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노란버스가 오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가 기저귀 가방까지 들고 힘겹게 서 있어도 무관심한 곳, 아이를 ‘건강히’ 낳아서 ‘건강히’ 키우려면 일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
프랑스의 출산율 증가는 ‘우리들의 아이’를 힘을 합해 ‘건강히’ 키워내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출산율 감소에 이어 소아 및 청소년 범죄율의 급증, 정서 및 행동문제 급증 등의 문제까지 접하고 싶지 않다면,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접근을 ‘건강한’ 우리 후속 세대를 함께 키워내는 방향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문성원/우석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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