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5 17:52
수정 : 2007.02.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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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숙/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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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책 속에 많은 녹봉이 있다.”(書中萬重祿) 공부하면 벼슬아치가 되어 많은 녹봉을 얻는다며 독려하는 이 말은 과거제도를 전제로 한다. 시험에서 뽑은 인재를 관리로 임용하는 과거제도는 분명 합리적이다. 그러나 녹봉 외에 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직업 보수가 미미하였던 전통사회에서, 과거제도는 표어에서 보듯 공부와 관직, 그리고 경제적 보상을 단단히 연결시키기는 문화를 낳았다. 이 삼자 결합관계는 조선역사 500년 동안 지속·강화되었고, 현재도 관직을 대하는 우리 태도에 영향을 준다. 고위공무원 시험과 사법시험 등을 과거시험과 비슷하게 여기면서, 녹봉만큼의 경제적 보상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면 관직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당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근대 정치발전의 모범인 영국에서는 주요 관직이 무보수였다. 영국정치의 중추로서 높은 권위를 지니는 의회의원들은 13세기 초부터 내내 무보수였다가 1911년에야 비로소 봉급을 받기 시작했다. 지방통치를 전담한 치안판사들도 무보수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관리를 뽑을 때 1단계에서 능력 위주로 후보자를 선정하고, 2단계에서는 그 중 최고액 기부자를 선발하라고 제안했다. 영국이 프랑스 혁명에서처럼 통치계급을 단두대에 보내 제거하지 않고 이제껏 국왕제와 귀족제를 유지하며 정치적 안정과 발전을 이룬 데는, 이런 영국 지배계급의 행태가 한몫을 하였다. 게다가 영국 귀족은 과거에도 조선 양반과는 달리 ‘세금 안 낼 특권’을 지니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에서 읽을 핵심은 영국 통치계급의 ‘훌륭함’이 아니다. 지배 계급의 행태는 피지배 계급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므로, 영국 정치 발전에서 칭송받을 자는 지배 계급을 효과적으로 통제한 일반 영국민이다. 그리고 실상 그렇게 감독함으로써 직접 이익을 챙긴 계층도 그들이다.
이참에 고위공직자 대우와 감독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듣기에 괴로운”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의 인준청문회다. 그는 대법관직을 퇴임하자 민간 법률회사에 고용되어 “일반 국민이 듣기에 괴로울 정도로 많은 급여”를 받았고, 그래서 “면목없다”고 말했다. 그 얼마 전에 이용훈 대법원장도 법관직을 떠나 있던 막간에 62억원을 번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는 청문회장에서 인준을 앞둔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민망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처럼 퇴임한 공직자가 해당 분야 민간사업에서 거액의 수입을 올리는 일은 물론 법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행정부 고위관직 퇴임자도 그에 못지않다고 보도된다. 납세자로서 그들에게 적지 않은 봉급을 지급하였고 퇴직연금도 부담하는 국민이, 공직 경력을 이용하여 그들이 떼돈을 버는 데 대하여 속수무책이란 말인가?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관직에 대한 전통 사회적 관념에서 분명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제 관직은 여러 직업 중 하나며, 그러기에 관직 보수는 전통사회의 녹봉과 같은 우월한 경제가치를 더는 지닐 수 없다. 세금에서 봉급을 받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을 납세자가 엄히 감독하지 않는다면, 관직을 권력과 부의 기반으로 여기는 구시대적 공직자는 국민을 계속 봉으로 알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직자를 대우하는 제1 원칙으로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돈 많이 벌고 싶은 자는 공직에 들지 말라.”
공직자를 감독하는 일은 물론 그들의 재임기간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퇴임한 고위공직자가 해당 분야 민간사업에서 거액의 수입을 올리는 작태도 규제해야 한다. 급여 면에서 보면 국회의원도 고위공직자의 한 부류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우선 이를 규제하는 법률을 당장 제정해야 한다.
이태숙/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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