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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9 16:45 수정 : 2007.02.09 16:45

강주연/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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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국내 백화점이나 브랜드들이 ‘세일’에 인색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 안 가던 백화점도 세일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열겠다는 소비자들도 이제는 좀더 현명하게 바겐세일 쇼핑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출장으로 찾아간 유럽은 들르는 도시마다 바겐세일이 한창이었다. 호화롭고 권위 있기로 유명한 런던의 해러즈백화점(이곳은 여전히 반바지 차림의 남성은 입장을 못하게 하는 등 최고급이란 이미지를 철저히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1층 화장품 코너에는 세일 품목 화장품들이 질서있게 매대에 누워 있는 것을 시작으로, 의류 및 구두, 생활용품 등 품목 구분이 없이 30%에서 많게는 70%까지 싸게 팔고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사 이래 어떤 백화점 세일에서도 볼 수 없는 고급 화장품 브랜드들을 깎아 파는 모습이었다. 백화점 의류매장이 아무리 대대적으로 할인판매를 해도 1층 화장품 코너만큼은 고작 파우치나 견본 몇 개로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러즈백화점에서는 1년에 단 두 번 8월과 1월만큼은 체면을 벗어던지고 고급 화장품들까지 세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구찌, 지미 추, 마놀로 블라닉, 프라다 등 내로라하는 고급 구두들 역시 이 세일 때만큼은 브랜드 구분 없이 마구 섞여 사이즈별로 진열대에 놓이는데, 이는 마치 우리 남대문시장의 구두 가게와 별 다름없는 풍경이다.

서울로 돌아와 주말에 백화점에 들렀다. 우리 백화점들도 아직 세일 중인 곳이 더러 있었지만 그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고급 수입 브랜드 중에서는 아예 세일을 하지 않는 곳들도 있었으며, 한다 하더라도 30% 이상의 세일 폭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1층 화장품 코너? 물론 언제나 그렇듯 ‘노 세일’이다.

외국의 유수한 백화점들도 품위를 집어던지고 공격적인 세일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데, 우리 백화점들은 어째서 세일에 대해 이렇듯 미지근한 것일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국내 백화점들이 안고 있는 재고들의 대부분은 ‘백화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 백화점이나 멀티샵들이 브랜드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대부분 ‘완전 사입’의 형태를 취하는 데 비해 국내 백화점들은 아직도 재고에 대한 부담을 각 브랜드에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1년에 단 두 번만 하는 대신 과감한 세일 폭을 유지하는 외국의 사례에 비해 국내 백화점들은 1년에 네 차례를 기본으로 더 자주 바겐세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패션은 생선과 같다’는 말이 있다. 곧 패션의 생명력은 ‘신선함’이란 뜻이다. 6개월이라는 기본 생명의 주기를 타고나는 패션은 자신이 태어난 시즌이 시들어 갈 무렵 그 생명력도 힘을 다해 가는 것이다. 제철에 제대로 값을 치를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는 적절한 시즌에 그 제품의 신선도를 만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며, 이미 시장에서 생명력을 다해 가는 제품들은 당연히 반값에라도 누군가에게 팔아넘겨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냉혹한 패션의 주기다.

버젓이 외국의 다른 도시에서는 한창 빅세일 중인데도 국내 시장에서만은 소폭의 세일로 ‘시늉’만 하는 수입 브랜드들이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서는 ‘노 세일’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몇몇 브랜드는 패션의 신선도를 즐길 소비자들의 마땅한 권리에 누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강주연/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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