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14 17:43
수정 : 2007.02.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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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서울대의대 내과학교실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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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근 폐결핵 집단 발병이 끊이지 않아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훨씬 위험한 종류의 결핵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운전을 하는 43살 김아무개씨는 3년 전 폐결핵으로 진단받고 결핵약을 처방받아 복용한 지 한두달 만에 증상이 좋아져 치료를 중단했다. 최근 다시 열이 오르고 가래가 나와 병원을 찾았는데 결핵 재발 판정을 받았다. 다시 결핵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꾸준히 먹어도 증상이 좋아지는 기미가 없어 의아해하던 차에, 담당 의사가 검사 결과 일반적인 결핵약에 내성이 있는 ‘다제내성 결핵’이라며 다른 약을 처방해 주었다. 잘 낫지 않는 위험한 병이라는 설명을 듣고 약을 꾸준히 먹기 시작하였으나, 빠듯한 살림에 한 달에 20만원 가까이 되는 검사 및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치료를 다시 중단해 버렸다. 이후 기침이 심해지고 숨이 차 견딜 수 없어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는 담당 의사의 얘기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다제내성 결핵’은 가장 강력한 결핵 치료 약제인 아이소나이아지드와 리팜피신에도 끄떡없는 결핵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5천명 가량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결핵은 약만 잘 복용하면 거의 100% 완치되지만,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제들의 효과는 훨씬 미흡해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국제결핵연구센터는 한국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완치율이 24% 정도라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완치되지 않은 많은 환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다제내성 결핵을 전염시키며 결국에는 사망하게 되므로 이 질병은 공중보건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완치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대개 2년 남짓한 치료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자의로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40%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이 환자들이 복용해야 할 약제들이 부작용이 심한데다 비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결핵 치료에 우선적으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에게 주로 사용되는 스트렙토마이신, 파스 등은 청력 감퇴, 독성 간염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며, 비교적 최근 개발된 퀴놀론계의 항생제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필자의 조사 결과 검사비와 약값을 포함한 직접치료 비용과 노동력의 상실로 말미암은 간접비용을 포함한 총 치료비용이 내과적 치료로만 완치된 환자의 경우 1752만원, 병이 심해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경우는 5210만원일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치료비용이 많이 드는 난치성 전염병에 시달리는 이 환자들을 위한 보건 당국의 배려는, 총비용의 일부에 불과한 직접치료 비용의 약 50% 정도를 건강보험을 통해 지급해 주는 것이 전부다. 이것은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사실 단순한 감기나 소화불량 같은 간단한 질병에도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혜택에 불과하다. 암 환자이나 장기이식 환자,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의 경우 본인 부담금의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지만 공중보건학적으로 더욱 위험한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에게는 어떤 추가적인 배려도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은 보건당국에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이 약의 부작용과 비싼 약값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다 치료를 포기하면 환자 자신도 사망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킨다는 사실을 보건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완치율이 24%밖에 되지 않는 난치성 전염병인 다제내성 결핵 환자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무엇일까? 해답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이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 면제를 통한 치료비 지원이다.
임재준/서울대의대 내과학교실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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