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2.21 17:18 수정 : 2007.02.21 17:18

신영전/한양대 교수·사회의학

기고

정부는 20일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 대한 외래 본인 부담금 부과를 뼈대로 하는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아울러 빈곤층의 의료 이용을 제한하는 건강생활 유지비, 선택 병의원제, 의료급여증 카드제 등의 정책도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부조의 정신을 훼손하는 차별적 정책이라는 이유로 100에 가까운 빈민·인권·시민·노동 단체들이 반대성명을 냈음에도 정부는 빈곤층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이들 정책을 기어이 강행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지난 1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의 개정안이 “의료급여 수급권자’(과거 의료보호 대상자)들의 건강권·의료권 및 생존권, 개인정보 보호 등에 대한 침해 우려가 있고, 일반 건강보험 적용 대상자 등과 비교할 때 불합리한 차별적 소지도 존재하며, 국가의 최저생활 보장 의무 및 공공부조 원리에 저촉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이므로,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의료급여 수급권자 및 관련 전문가 등과 충분한 사회적 토론 및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국가인권위는 특별히 “1종 수급권자의 외래 진료 때 본인 부담금 부과 조치는 일부 오·남용 이용자에 대한 개별적 제한 조치가 아니라 1종 수급권자들의 병원 이용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성격의 조치라는 점에서 다수 수급권자들의 의료 이용 접근성에 상당한 제약이 될 수 있고, 건강권이 위축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최종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조처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당사국으로서 최소 핵심 의무에 저촉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의견표명은 그간 주로 취약계층의 ‘자유권 침해’에만 의견을 내 왔던 국가인권위의 관행을 뛰어넘어 ‘사회권’에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역사적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비웃듯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이로써 모처럼 힘을 모았던 숱한 빈곤·인권·시민 단체들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번의 ‘잊혀진 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게 됐다. 반면, ‘부당하지 않은 차별’과 같은 현란한 정치적 수사, ‘한 해 1만3699개의 파스’와 같은 선정적 표현을 동원한 빈곤층 마녀사냥, 국민을 빈곤층과 비빈곤층으로 나누는 고도의 심리전을 이용한 유시민 장관의 정치적 노련함, 목적 달성 앞에서 잘못된 통계수치도 기꺼이 동원하는 ‘처벌받지 않는 관료권력’은 이 시간 또 한 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사태의 패자는 참여정부와 보건복지부 아닐까? 국내 대부분의 빈곤·인권단체들의 반대와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을 무시한 이번 결정은 그 오만함으로 말미암아 참여정부가 더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또한, 두고두고 우리나라 ‘사회권’ 역사의 오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건강권과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보건복지부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아울러 빈곤·인권단체들은 이번 정부 조처로 발생할 피해사례들을 찾아내어 지속적으로 사회에 고발하고, 헌법소원과 본인 부담금 납부 불복종 운동 등을 통해 이른바 ‘사회권 지키기 운동’을 폄으로써 거꾸로 돌아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며 다시 머리끈을 동여매고 있다.

하여, 다시 한 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묻는다. 인권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 그리고 ‘인권 없는 복지’로 만들려고 하는 세상은 누구를 위한 어떤 세상인가?

신영전/한양대 교수·사회의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기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