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26 16:58
수정 : 2007.02.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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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평화협력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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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미 외교 수립에 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는 남북 정상회담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2기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 정권도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조만간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기대감 섞인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상공에 실로 오랜만에 ‘토네이도급 제재’가 아닌 ‘외교 순풍’이 불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북-미 관계 정상화 길목에 어깃장을 놓을 이유가 없다. 정부의 당면한 대북 핵 정책 목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 및 핵사찰 관철이다. 동시에 북한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제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 요소들을 사전에 방지하는 일이 급선무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는 의미 있는 첫발이 될 수 있다.
김정일 정권으로서도 핵무기 개발 선언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체제유지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햇볕정책’으로 한동안 숨통을 틀 수는 있었지만 미국의 지원 없이는 정상 국가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음을 북한 최고권력층이 오히려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동결이 단적인 예다. 미 정보당국이 비디에이 계좌 말고도 추가로 불법 돈세탁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계좌를 이미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북한으로서도 지금이 여러 가지 정황상 핵카드의 유용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은 자국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해 왔으며, 궁극적으로는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라며 미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미국도 약소국의 협박에 굴복하여 타협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과 베이징에서 이루어진 북-미간 협상에서 이런 의구심은 상당히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자국 내 모든 핵시설의 항구적인 폐쇄가 이른바 ‘스카치테이프 붙이는 정도’가 아님을 어떤 형태로든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북한에 핵 없이도 체제유지가 가능하다는 강한 암시를 전한 것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던 북-미 양자회담의 초석이 클린턴 행정부 이후 어렵사리 다시 놓인 셈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기 보유 포기 및 이의 확산 방지가 당면한 대북정책의 최대 관심사였던 만큼 유연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북-미 간 국교 수립은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미국계 기업들의 대북투자 활성화와, 나아가 일본 및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국교수립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촉진제 구실을 할 것이다. 이는 북한을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려는 우리 정부의 오랜 정책과 기본적으로 부합한다. 다만, 북-미 수교로 예상되는 한반도 주변의 급격한 외교환경 변화로 일어날 국민들의 ‘일시적인 정신적 혼돈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미리 이를 홍보하는 일이 정교하게 마련돼야 한다. 북-미 수교가 우리 외교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외교에서 영원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병철/평화협력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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