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04 18:19
수정 : 2007.03.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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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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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충남 서천 지역의 개펄 2천여만평을 매립하여 국가산업단지로 만든다는 계획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989년에는 서천 지역이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이 공약은 금세 실현될 듯했다.
그러나 지난 18년간 개펄은 살아 숨쉬고 있었고, 어민들은 그 바다에서 삶을 살아왔다. 그사이에 새만금을 둘러싼 커다란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이미 엄청난 국가 예산을 투입한 사업이니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 이상의 개펄 매립은 경제성과 환경성 모두를 잃는 최악의 결정이라는 주장이 팽팽했다. 물론 사회적 공론은 개펄 보존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서천 지역 주민들은 정부의 약속만 믿고 18년을 기다려 왔다. 그들에게 아무런 대안 없이 중단을 말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을 주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환경부·해양수산부·건설교통부가 공동으로 6500억원 수준의 투자를 통해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을 건설하고 유관 연구 시설을 유치한다고 한다. 정부의 이러한 투자를 기반으로 하여, 에코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기반형 기업도시를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지금까지 강경한 태도만을 고수하던 서천군 역시 정부의 정책이 지역의 상황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18년 전 지역의 사정이나 환경, 경제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표된 정치인들의 선심성 지역 개발 공약을 지역의 상황에 맞는 실질적인 지역 발전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자연조건, 사회적 환경 등 지역의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산업단지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지난 18년 동안 우리 경제는 상당한 변화를 경험했으며, 기업의 입지방식도 바뀌었다.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80년대식의 산업단지 개발은 분양조차 어려울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지역 주민이 떠안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장항 지역의 ‘대안’은 긍정적이다. 또한 개펄이라는 상대적으로 희소해진 자연자원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정부의 장항산단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서천 지역의 개펄을 보존하고 수로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경영향평가는 정당한 법적 절차이며, 정치적인 고려를 통해서 그 내용이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정치가 법 위에 올라설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우리는 충분히 봐왔고 이제 정착 단계에 겨우 들어선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정치의 이름으로 훼손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정부 발표는 그동안 도식처럼 굳어져온 ‘경제와 환경은 서로 공존하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벗어난 사례다. 생태환경을 기반으로 자연을 느끼고 배우고 즐기는 여가문화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 모델’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경우, 아직 소규모이지만 지역의 환경과 관광을 결합한 시도들을 통해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사례들이 있고, 외국에는 큰 성공 사례들이 많이 있다. 이번 정부안의 모델도 영국인들이 낙후지역 개발을 위해 내놓아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 ‘에덴 프로젝트’이다. 서천의 ‘대안’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역 발전 모델의 출발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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