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4 17:46
수정 : 2007.03.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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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석/아주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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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학법 재개정은 아직도 국회의 뜨거운 감자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에 상고 중인 상지대 사건이 부쩍 관심을 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상지학원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을 두고 임시이사 권한 밖의 결의이므로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소송은 공금 횡령과 부정입학 등 혐의로 구속됨으로써 임시이사 파견을 부른 상지학원 전임 이사장이 제기한 것이었다. 그 결과 교수·학생·직원 등이 합심하여 학교를 발전궤도에 올려놓고 그것을 법적으로 마무리하고자 출범시킨 상지대의 정식이사 체제가 법적 암초에 부딪힌 셈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사립학교법에 규정이 없는 이상, 고법의 판결과 달리, 민법의 법인규정을 적용하여 임시이사에게 통상의 이사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또한 이번 판결은 ‘이사제도의 본질이 설립자가 선임한 이사를 통하여 학교법인 설립목적을 영속적으로 보장함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학교법인이 설립자로부터 인적 고리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서, 마치 세습제처럼 전근대적일 뿐 아니라 교육의 자주성과 공공성을 명령한 헌법에도 어긋나 보인다.
본연의 임무인 교육은 내팽개친 채 국고 보조금과 등록금만 챙기면서 족벌경영을 통해 치부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던 사학이 일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의 파견은 불가피하며, 이러한 국가의 감독권은 당연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임시이사는 비리 사학법인이 정상화될 때까지 ‘임시’적이지만, 헌법과 법률이 목적하는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사’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개방형 이사제도는 임시이사 파견 상황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교육 자주성을 담보할 발판 구실을 한다. 민주적 시민을 양성해야 할 사학법인이 일부 이사(4분의 1 이상)의 구성을 학교 구성원과 시민사회에 개방하는 것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사유재산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헌법 제31조 4항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은 사학법인의 자주성이 아니라 교육 자체의 자주성이기에 국가권력은 물론 사학법인의 부당한 개입과 횡포로부터도 지켜져야 한다. 헌법은 의회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제정 법률이 그 감시자 구실을 떠맡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가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아닌 사학법인이 설립한 특수성이 있지만, 법인으로부터 학교의 자주성과 공공성을 확보·앙양하기 위해서 사학법인의 설립·기관, 재산과 회계 등을 법률로 규율함은 물론, 국가 등의 지원과 감독에 관한 사항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재벌 권력, 언론 권력, 사립학교법인 권력 등이 약자인 구성원과 일반 시민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재산권을 무기로 삼아 약자의 인권을 침탈하는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물론 민주주의가 발전하더라도 국가 권력의 남용 가능성은 여전히 남기에 이들의 자유 공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회적 영역에서 국가 권력에 버금가게 비대해지는 이들 권력을 방관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 위에 세워진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참여와 감시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학법인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 민주사회에 걸맞은 교육이념에 충실하게 학교 설립 이념과 목적을 실천해 나가는 길이 교육의 정도일 것이다. 그 길로 가는 과정에 시민사회야말로 사학법인 자율성의 가장 강력한 지킴이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오동석/아주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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