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5 18:33
수정 : 2007.03.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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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태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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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과 총선 주기 일치’를 뼈대로 하는 개헌 시안을 발표했다. 현행 ‘5년 단임제’로 말미암은 국정운영의 결손과 레임덕 현상을 절감한 고뇌를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대통령 4년 연임제’가 국정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에 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설득과 협상을 통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의원들은 당론과 상관없이 소신껏 표를 던지는 교차투표 제도가 작동한다. 더욱이 미국 ‘대통령 4년 연임제’는 연방제와 결합되어 있다. 이런 요인들에 힘입어 미국 정치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국정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실현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정치구조에는 그런 정치적 유연성과 시스템이 거의 전무하다. ‘대통령 4년 연임제’가 현행 중앙집권적 정부구조와 포개질 경우, 지역을 기반으로 한 양대 보수정당 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다. 또한 ‘대선과 총선 주기 일치’에 따른 여대야소 정당지형이 출현할 경우 국가권력의 승자독식성은 더욱 강화되어 야당과 집권당 간의 정치경쟁은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다. 우리 국민 상당수는 올해가 개헌 시기로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대통령 4년 연임제’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다. 만일 개헌이 필요하다면 올해가 최적기이다. 상대적으로 개헌의 정략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4년 연임제’가 국정의 책임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정치구조가 ‘정당연합’을 유도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선거제도다. 진보 학계에서는 ‘독일식 연동형 혼합제’(소선거구 +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제)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행 소선거구제에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선거제도를 도입하여 이를 대폭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우리의 정당체제를 다양한 사회 갈등을 대표하는 보수-중도-진보의 이념적 블록 구도로 분화되는 온건다당제로 재편하고 자연스럽게 ‘정당연합에 기초한 연립정부’ 출현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제는 연립정부와 조응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제에서도 연정 구성이 불가능하거나 ‘예외적 경우’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4년 연임제’가 온건다당제에 기초한 연립정부와 결합하는 것이 국정의 책임성, 연속성, 효율성을 높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개인별 손익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선거제도의 개혁은 그들에게 맡겨서는 안 되고 정치적 아웃소싱을 필요로 한다. 1993년 뉴질랜드는 선거제도를 독일식으로 바꾸기 위해 국민투표에 부쳐 실현시켰다.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독일식 선거제도를 완강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독일식 선거제도는 소수정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번 개헌안과 함께 선거제도의 변경 의제를 하나로 묶어서 발의한 후 열린우리당과 소수 야당들의 협조를 얻어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이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선학태 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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