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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1 18:37 수정 : 2007.03.21 18:37

소순창 건국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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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변해 왔고, 그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들도 다양했다. 최근, 참여정부의 리더십 부재가 언론에 많이 기사화되고 있다. 일면 타당한 측면도 있어 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팔로워십의 부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리더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리더십은 대다수의 팔로워(follower)들이 지원할 때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권위주의 시대의 일반 대중들은 민주사회에 들어와서 저마다 주인으로서의 권리만을 주장한다. 그런데 성숙한 민주시민 사회가 되려면 그 사회의 주인인 시민들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 그리고 희생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1960년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먼저 생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희생과 책무를 요구하는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그만큼 성숙한 시민사회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만약에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이러한 취임연설을 한다면, 우리의 국민들은 어떻게 그 연설을 이해할까. ‘무지한 대통령’,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평가하지는 않을까? 이제 더는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들이 정부와 협력해서 국정을 도모하는 거버넌스(협치) 시대가 오늘날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데서 리더의 생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사회로 갈수록 그에 못지않게 일반 대중들의 가치관과 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온다 하더라도 다양한 국민들의 이해관계와 복잡한 갈등구조 속에서는 대통령 해먹기가 그리 만만찮을 것이다. 저마다 자신들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해야 할 책무와 희생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극도로 이기적이게 되고 갈등의 폭증으로 결국 정부는 찬란한 미래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 및 갈등의 해결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강제적으로 억누르는 방법은 더 사용되어서도 안 되지만, 결국 또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게 될 수 있다.

작금의 많은 대형 국책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의 무능함도 없지 않지만 정책 관련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이기적인 태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표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공익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지역적 이기주의에 부화뇌동할 수밖에 없다. 공익 기준에서 볼 때, 그들은 잘못된 여론을 바로잡거나 지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도자, 정치인 등의 리더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열심히 하여도, 특정인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잦았다. 권위주의 시대처럼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리 만무하다. 이제는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다. ‘리더’는 정치적 메시아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해서도 아니 된다. 민주사회에서 ‘리더’는 바로 우리 일반 국민이어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일반 대중인 팔로워들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소순창 건국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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