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6 17:46
수정 : 2007.03.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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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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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의 신이다. 의술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의학을 전공하는 모든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의학 관련 상징물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뱀과 지팡이는 바로 이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번개에 맞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왜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어야 했을까? 신화에 따르면 그가 사람을 살려내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았고 그것이 제우스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혹자는 이것은 단지 음모이며, 자신보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더 유명해지자 이를 시기한 제우스가 그를 모함하여 죽였다고 한다. 신화인 까닭에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또한번 아스클레피오스의 죽음이 준비되고 있다. 최근 참여정부는 ‘의료산업의 선진화’라는 기치 아래, 보건의료 영역에 투기성 자본을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이른바 의료부문의 영리화, 외국병원 유치,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종합판이 바로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마침내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일이 될 것이다.
의료서비스 산업화로 대변되는 정부의 정책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우선 대다수 국민들은 엄청나게 증가한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이른바 2류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2류 국민이 되고, 계층 간 건강과 의료이용의 격차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급격한 영리화가 이루어진 미국의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한 하버드대학교의 레빈스 교수는 미국이 국내총생산의 14%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보건의료비로 쓰고 있지만 이것은 미국 사람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받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더 비싼 서비스’를 제공받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4천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장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때문이다. 막대한 돈을 지출하면서도 그보다 적은 돈을 지출하는 나라들의 국민들에 비해 미국 국민들의 건강수준이 낮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의료체계의 근간인 일차의료를 담당한 개원의사들 역시 거대 할인매장 앞의 영세 상인처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영리화가 가속되면서 미국의 일차 개원의사들은 환자들 건강의 ‘문지기(gate keeper)’에서 대형병원의 이해를 위해 존재하는 ‘문 단속자(gate shutter)’로 그 구실이 축소되었다. 또한 미국 지엠의 사례와 같이 ‘불필요하게’ 증가한 의료비는 국가의 ‘성장 동력’이 아닌 노사 모두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의료서비스의 영리화가 가속화할수록, 가난한 환자의 쾌유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교과서적 진료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시대의 선한 히포크라테스들은 그저 돈 못 버는 무능한 의사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단지 특정 집단만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소중한 상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의료가 상품이 아니고 인술임을 믿는 사람들, 적어도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이 아파도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천박한 정부의 영리화 정책에 분연히 저항해야 한다. 우리 시민사회의 이 저항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많은 아픈 이들의 희망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또한번 제우스의 번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신영전 한양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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