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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27 17:33 수정 : 2007.03.27 18:57

강기갑/민주노동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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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정상회의에서는 세계 185개국 및 유럽연합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식량안보에 관한 로마선언>이 채택됐다. “우리는 식량안보를 위해 지속가능한 농업·어업·임업에 대한 개발과 잠재력이 높은 지역 뿐만 아니라 낮은 지역의 농촌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다원적 성격을 지닌 식량 안보는 일관된 국가 방침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국가 방침을 보완하고 강화시키는 효과적 국제 활동을 요구한다는 점을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침을 선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역이 식량문제 해결의 한 방편은 될 수 있지만, 식량문제는 시장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농업이 취약한 G10그룹 회원국인 스위스 정부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농업부문의 이해 차이를 좁히지 못해, 대미수출이 40%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일본 자민당 3선 의원 고노 타로는 지난 2월 6일 우리나라 <기독교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이 먼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미국 시장을 선점할지 모르니 서둘러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며 “일본은 한국이 미국과의 에프티에이에서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지켜보고 준비한 뒤에 협상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선언과 주장, 그리고 행동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계의 냉정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식량의 절대생산량이 늘어도 기아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아니라, 기상이변은 심상찮은 수준이 된지 이미 오래다.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등 겨우 5개 독점기업이 전 세계 곡물교역량의 80%를 차지하고, 10여개의 초국적 기업이 종자·비료·식품 유통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각국의 지도자들과 학계, 심지어 미국조차 자국의 농산물 보조금 축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에서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42%는 국가 재정의 기반 위에 있는데 농정불신을 얘기할 수 있느냐”며, “농업도 시장 안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대책없고 졸속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중단하라는 농어민들을 하루아침에 ‘염치없는’ 국민으로 만들어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운을 융성하게 하며,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왜곡된 믿음 속에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첫째, 대통령이 지적하는 현재의 농산업구조는 독재정권,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모두 산업화·개방화를 부르짖으며 일방적인 농업의 희생을 강요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 둘째, 농업은 생명, 환경, 주권을 지키는 기간산업이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쟁력 있는 특화작목’으로 농업의 체질개선을 운운하는 것은 건강한 국민식생활과 좁은 국토를 상기할 때 기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350만 농민들은 국민이 아니었고, 한국 농업은 골치 아픈 불량산업에 불과했다. 칠순의 촌로가 시위진압 경찰에 의해 아스팔트 위에 쓰러지고, 한 정당의 대표가 20일 가량 단식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수의 국민이 졸속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모두 귀를 막고, 고집스레 협정 체결을 강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가진 농업관, 농민관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통탄할 일이다.


강기갑/민주노동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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