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9 18:33
수정 : 2007.03.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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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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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무현 정부 안팎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벌써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착각이다. 국제협상의 타결은 정부의 결정만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국내 비준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국회, 궁극적으로는 시민사회가 결정할 일이다. 국회의 비준 동의안을 얻지 못한 협약은 무효이며, 시민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협정은 애물단지일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그런 운명에 처할 가능성은 상당하다.
낙관론자들은 일단 협상이 타결되면 국회가 이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국가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국회가 어떻게 정부가 서명한 협정을 무효화시키겠냐는 것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경우도 일부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비준 과정이 늦어져 타결 뒤 발효까지 1년 반이나 걸렸지만 결국은 통과되지 않았느냐고 한다.
과연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그렇게 통과될 수 있을 것인가. 국회의 비준 동의안 가결 여부를 결정짓는 변수는 크게 세 가지다. 여론의 향배, 이익집단 정치의 전개 양상, 그리고 이 두 변수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국회의원들의 선호 구조다. 한-칠레 협정의 경우 여론은 압도적 찬성이었다. 세계화 시대에 자유무역협정 추진은 필수이며 칠레 정도의 경제라면 우리에게도 별 무리가 없으니 우리의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은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익집단의 반대도 제한적이었다. 농업의 일부만이 피해를 우려했고, 농민단체마저 의견이 찬반으로 나뉜 상태였다. 단지 국회의 반대는 대단했다. 비록 일부 농업부문의 반발에 불과했지만 국회의 30%를 차지하는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그것에도 민감했다. 그들은 이른바 ‘농촌당’ 의원들로 뭉쳐 본회의를 세 번씩이나 무산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여론과 여타 이익집단들의 지지를 받는 70%의 찬성파 의원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칠레 경우와는 다르다. 우선 반대 여론이 거세다. 초기엔 약세이던 반대 의견이 지금은 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원칙적 지지자들도 미국 일정에 맞춘 졸속 추진과 조기 체결에는 대부분 반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협상 내용을 보면 이는 당연한 소치다. 얻은 건 거의 없고, 내준 건 너무 많다. 이번 주말 협상이 타결되어 그 최종 내용이 만천하에 공개되면 반대세력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동안 내용을 잘 알지 못하여 신중 혹은 유보적 자세에 머물던 이들 중 상당수가 반대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익집단들의 조직적 반발도 그 양상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일부만이 아닌 전체 농업이 저항하고 있으며, 거기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상당 부문, 특히 노동과 중소기업, 그리고 무수한 시민단체들이 가세하고 있다. 이익집단 변수의 이러한 변화는 국회 상황도 크게 바꿔놓고 있다. 일부 농업만의 반발로 의원들의 30%가 모여 협정 발효를 1년 반이나 연기시켰던 국회다. 그런데 이제 의원들이 의식해야 할 반대 집단들의 규모와 범위는 훨씬 크고 넓어졌다. 게다가 반대 입장을 취할 경우 여론의 지지를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반대파 의원들이 훨씬 많아질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국내 비준을 낙관할 상황이 결코 아니다. 이 상황에서 협정 타결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책임한 정부다. 더구나 현 정부의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타결 뒤 국회 및 사회의 국내 비준 과정에서 벌어질 장기간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더 나아가 비준이 거부될 경우 그에 따른 국내외적 부작용은 어찌 할 것인가.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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