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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0 17:51 수정 : 2007.04.10 17:51

전진삼 건축비평가·〈AQ북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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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의 디자인 공방이 법정에 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디자인의 진품 논쟁이 아니라 건축설계권자가 제출한 디자인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초유의 법정이 개설된다면. 각각의 디자인이 갖는 분명한 이유 앞에서 법정은 진위를 가리는 차원을 넘어서는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골치가 아플 것이다.

작금의 문화재위원회 4차 심의를 조건부 통과한 서울시 새청사 변경안을 두고 건축계와 문화재 관련 인사들의 항의성 발언이 거세다. 서울시가 발표한 새청사 건립안에 대한 호불호에다 건립 터에 대한 재고 차원에서 공방의 수위가 사뭇 심각하다. 그동안 3차에 걸친 건립계획안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건축계 안팎에서 서울시 새청사의 디자인으로는 부적격하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대개는 기존 서울시 청사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건축조형 언어의 폭력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10층 이상의 고층건물 형태는 어떤 식으로든 인근의 사적지 덕수궁과 원구단 등 도심지 역사문화 경관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고, 그 대안으로 용산으로 이전하는 신축 건립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건부로 통과한 서울시 새청사의 경우 지금껏 제시된 바 있는 여러 계획안들에 비해 기존 청사에 대한 고압적인 디자인의 작위가 상당 부분 개선된 형태를 보여준다. 반면에 서울시 새청사와 관련해서 특이점을 찾고자 했던 다수(?)의 열망은 일단 후퇴한 격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 발표된 최종안은 탈권위적인 정면성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번엔 성냥갑을 세워 놓은 듯한 건물의 매스계획(건폐율과 용적률을 고려한 건물형태 계획)이 일반적인 오피스건물의 전형이자 시대적 디자인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면 어느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디자인에 정답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누가 결정권자이냐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전까지의 설계 과정에서 보아왔듯이 서울시 새청사의 디자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게 될 공산이 크다. 각급 심의위원회의 주문에 따른 짜깁기식 디자인의 결정판이 최종답안이 될 것이며, 또한 공사 도중에 설계변경을 감행할 때 바깥 입김이 작용할 여지도 농후하다. 최종안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의 계획안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립 터의 적정성에 대한 강한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새청사의 건립 터를 현재의 위치로 고수하는 한 까다로운 설계조건을 극복하며 동시에 세계적인 시선을 한몸에 받는 디자인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건립 터의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

오는 4월13일 문화재위원회는 조건부 통과한 변경안을 다시 심의하기로 되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앙각규정에 따라 건물의 높이를 조금 낮추고 기존 청사와 새청사의 간격을 좀 더 벌린다는 조건이다. 지금까지 문화재위원회는 새청사 계획안을 두고 건물 높이와 외관의 조형적 측면에서 디자인적 가치판단을 해왔다. 그러나 4차 심의의 조건부 통과안은 위원회의 기조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변경안은 최소한의 높이 낮추기를 통해서 최종 수용될 전망이 커졌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건립 터는 비워둬야 제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건축사사무소들이 먹잇감 앞에서 정신을 잃고 덤벼들었던 실책이 이처럼 뼈아픈 사태를 자초했다. 그 배경에 1군 건설사들이 주체가 되어 끌어가는 ‘턴키제도’의 무소불위적 건축 생산 시스템이 어느덧 건축 판단의 블랙홀로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전진삼 건축비평가·〈AQ북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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