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4.11 17:53
수정 : 2007.04.11 17:53
|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
기고
남해 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미륵도라는 섬이 있다. 지금은 통영대교 덕분에 육지의 일부가 된 이 섬에 통영시는 135억원을 들여 4천여평의 산중턱을 깎아내고 수산과학관을 지었다. 낡은 집도 마음대로 못 고치는 국립공원 안에서 이 정도의 건물을 새로 짓기가 쉽지 않은데 통영시의 설득이 꽤 집요했던 모양이다. 이 건물은 해마다 6억원의 적자를 내는 흉물로 변하고 있지만 통영시는 그 위에 다시 8천여 평의 산마루를 깎아 8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을 지으려 하고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고 수산과학관의 적자도 메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공원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지난해 7월부터 국립공원의 자연환경지구 안에서는 숙박시설의 설치가 불가능하다.
경상남도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추진 중인 사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화도 불교테마성지, 추봉도 관광휴양섬 개발, 추도 가족휴양섬 조성, 관음포 해양관광 휴양단지 건설 등 모두 120만평에 500억원 규모의 투자계획들이 대기 중이다. 전라남도에서도 자은도, 하조도, 백야도 등 22개 섬 100만평의 땅에 골프장, 리조트, 콘도미니엄 등을 건설하기 위해 1조700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지만 역시 자연공원법이라는 장애물에 막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남 및 경남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8월부터 9월 사이 남해안균형발전법(신중식 의원 등 19인), 남해안발전특별법(김재경 의원 등 28인), 남해안발전지원법(주승용 의원 등 23인)을 잇달아 발의했다. 지역개발특별법을 새로 만들어 국립공원 규제를 무력화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이어서 12월에는 동해안광역권개발지원특별법(윤두환 의원 등 15인)이 발의되고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이 법안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연안권발전특별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4월 임시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다른 한편 강원도에서는 설악산국립공원의 개발을 촉진하는 통일관광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정문헌 의원 등 51인)이 발의돼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 중이고, 건설교통부는 19개 국립공원이 포함되는 서남권 등 낙후지역발전 및 투자촉진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정부가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97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열기 위해 스키장과 콘도미니엄 단지를 건설할 때 환경단체들은 이렇게 질문했다. 국립공원은 개발의 대상인가 보존의 대상인가? 끈질긴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국제대회가 중요하다는 여론에 밀려 덕유산에서는 패배했지만 국립공원에서 스키장과 골프장, 콘도미니엄을 더는 허용하지 않는 법 개정 운동은 환경단체들이 승리했다. 덕분에 가야산과 치악산 국립공원의 골프장 사업, 설악산과 한라산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사업 등 전국의 국립공원에서 들썩이던 개발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공원법 개정 후 11년 만에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남해안에서 불기 시작한 개발바람에 동해안과 서해안까지 합세하여 전국의 국립공원들이 지역개발의 영향권에 휩쓸리는 위기를 맞고 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다시 묻는다. 국립공원까지 개발해서 먹고살아야 할 정도로 지역경제가 어려운가? 국립공원에 골프장과 호텔을 건설하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특별법들이 지향하는 국립공원 개발은 원주민을 내쫓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투기자본에 봉사하는 식민지형 개발이 아닌가? 국립공원을 보존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국민들은 국립공원을 포기하는 권한까지 국회에 위임한 것이 아니다.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연안권발전특별법을 처리하기 전에 이런 질문들에 답변부터 하는 것이 국립공원의 주인들에 대한 도리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