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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2 21:54 수정 : 2007.04.12 21:54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

기고

최근 들어 대입 ‘3불 정책’은 대학생 선발을 둘러싼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적 성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고 있다. 교육을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3불 정책은 자유로운 대학진입을 막는 대표적 규제로 여겨지며, 공정하고 형평성을 갖춘 대입제도가 원활한 계층이동과 사회통합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3불 정책은 교육의 공공성을 위해 정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엊그제, 한국교육개발원의 〈대입정책 연구보고서〉를 다룬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도 이 점은 여실히 드러났다. 연구보고서에는 3불과 관련하여 한마디 언급도 없지만 일부 논자들은 정부의 3불 정책에 대한 도전으로 몰아가면서 아전인수격으로 본고사 부활을 주장하였다.

3불 정책은 본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마련되었던 2002 대입제도의 전제조건으로 구체화되었다. 본고사와 수능점수 위주의 입시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제대로 잴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그 바탕이었다. 따라서 3불 정책은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 대학 본고사의 금지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를 제외한 어떤 방법도 대학별 특성과 이념에 따라 자유롭게 고안하여 활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상위권 사립대학들이 세계적 표준인 양 강조하는 기여입학제는 지원자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기초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평가의 공정성 원칙에 위배되므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기형적인 제도다. 미국의 사립대학에서도 입학사정을 책임지는 입학사정관들의 사정작업 속에는 기여입학이라는 특혜적 선발이 포함되지 않으며, 대학 경영자들이 정치적 고려에서 제한적으로 결정할 뿐이다. 2004년에 제출된 영국의 〈공정한 대입선발 실천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신입생 선발에서 학생 자신의 능력과 무관한 형제나 부모의 동문 여부 등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교등급제는 특정 학교의 과거 성적 수준을 고려하여 그 학교 출신자들의 성적을 일률적으로 유리 혹은 불리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학생에 대한 평가가 그 개인이 지닌 가능성과 성취 결과 등을 따져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원칙에 위배된다. 손쉽게 특정 고교 출신을 선점하려는 대학의 편의주의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고교등급제는 교육 분야의 카스트 제도에 지나지 않으며, 선배들의 실적으로 후배 학생들을 평가하는 교육연좌제의 위험을 안고 있다.

대학 본고사를 거쳐 진학했던 오륙십대는 차라리 옛날처럼 대학별 고사로 학생을 뽑는 게 낫다는 주장을 한다. 일부 여론주도층에서도 본고사 실시 여부가 대학 자율성의 척도인 양 간주하고,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본고사 부활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고등교육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미국이나, 기업인들의 대학 만족도가 가장 높은 핀란드에서는 본고사로 신입생을 뽑아서 경쟁력이 높은가? 아니다. 알 만한 선진국 중에서 대학 본고사를 보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교육과 재수·삼수생 문제로 고등교육 진입 단계의 낭비가 큰 나라다. 세계적인 명문대학들이 본고사 대신 복잡한 다면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뽑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차례 시험으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할 수 없으며 창의적이고 다양한 대학문화를 만들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의 3불 정책은 부정적인 명칭 때문에 구시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 본고사의 속성과 내용을 정확히 알면 3불 폐지론이야말로 봉건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제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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