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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7 17:51 수정 : 2007.04.17 22:23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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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 무효를 외치는 촛불모임, 걷고 소리 지르기 여섯 시간 동안을 볼일도 못 보고 참는다는 건 또한 매우 어려운 일. 그래도 꾹 참고 버티었더니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다 뻐근했다. 겨우 연구소엘 나왔는데 한 노동자 시인이 찾아왔다.

언젠가 때속(감옥)에서 보낸 그의 시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노동자의 희망은/ 얼어터지는 겨울밤/ 그 절망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겨울밤)

깜짝 놀라 맞글을 띄웠었다.

“여보게! 때속에서 시간이 나면 꼭 시를 쓰게.”

그랬더니 늘 밥 굶기를 한다던 그가 나타났기로

“이게 누구야, 때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네, 삼년 징역에 5년 집행유예, 거기에 2년 보호관찰로 나왔습니다.”

“자네들을 폭도처럼 몰았었는데.”

“사람을 폭도라는 안경을 쓰고 본 탓이지요. 건설공사는 도급 일곱 고비를 거쳐야 마지막 일을 따는데, 공사비 60퍼센트가 날아갑니다. 거기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해보아야 손에 쥐는 건 한 달에 백만 원. 그것으로 네 식구가 사는 것도 폭도입니까.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은 이가 한해 팔백 명입니다. 그것도 폭도냐구요.”

꼭 나를 칠성판에 올려놓고 닦달하는 것 같아 말을 돌려보았다.

“여보게, 밖엔 꽃이 피었다네. 애들을 데리고 나들이나 가지, 여긴 왜.”

“골프장 출입딱지(골프회원권) 하나가 수억원, 그런 걸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나들이지, 우리가 어딜 갑니까.”

“그럼, 애들 공부라도.”

“서울 강남에는 중학생 하나의 한달 영어 과외비가 650만원이랍니다. 우리 애들이 어디서 무슨 공부를 하겠습니까.”

“어허, 복권이라도 노려볼 일이군.”

“복권이라니요, 미국의 어느 부자는 포스코 주식을 잠깐 사두었는데 얼마 안있다가 7500억원을 불렸답니다. 그것이 복권 아니겠습니까.”

칠성판에서 다시 천장에 매다는 것 같아서 말을 또 돌려보았다.

“여보게, 내가 때속에 있을 적엔 감자탕이 그리 먹고 싶었었네. 또 나가면 한바탕 소리를 지르리라, 다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자네는.”

“먹고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참에 하고 싶은 것은 실컷 무지땀(피눈물의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나는 대뜸 이건 ‘새뚝이’다 하고 울부짖었다. 먹다구니(침묵)까지 삼킨 썩은 늪이라고 하더라도 퐁당! 돌멩이 하나로 깨뜨리는 현상 타파의 ‘새뚝이’. 언젠가 나는 시 쓰는 그 노동자에게 “역사는 우리들에게 긴장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긴장을 먹거리로 삼을 것이면 역사와 함께 한없이 발전하지만 그 긴장을 저버린다면 키가 안 커. 어려운 말로 ‘발육부진아’가 될 것이니, 젊은이여! 긴장을 먹거리로 삼으시라” 그랬었는데. 아, 달구름(세월)은 하염이 없는 것인가. 그 젊은이한테 떠밀려 잘 아는 학계, 종교계, 정치판, 예술문화계, 언론계에 말뜸을 던져본다.

절망을 이기는 것이 희망이라는 그의 말, 그것은 현대문명에 던지는 말뜸이요, 그래서 무지땀을 흘리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오늘의 썩은 늪에 던지는 ‘새뚝이’가 아니겠는가. 꽃이 피는데도 자꾸만 추워져 하는 말이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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